한국일보

트럼프 위한 공화당의 ‘변명’

2019-12-05 (목)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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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트럼프 탄핵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섰다. 12월 첫 주에 들어서면서 3일 하원 정보위가 대통령의 위법행위 증거로 ‘차고 넘치는’ 탄핵조사 공식보고서를 채택해 법사위로 넘겼고, 법사위는 그 보고서를 토대로 탄핵사유 법적근거 관련 청문회를 거쳐 탄핵소추안을 작성해 12월 중 하원 본회의 표결에 회부하게 된다.

정보위 보고서는 향후 ‘트럼프 탄핵의 로드맵’이 될 중대한 문건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개인적·정치적 이득을 국익보다 우선시 했으며…재선에 이롭게 하려고 자신이 직접, 또 정부 안팎의 대리인들을 통해 우크라이나 정부의 개입을 종용한 것으로 드러났다”는 결론 자체가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두 달에 걸친 조사를 통해 나온 증언과 증거를 비롯한 모든 정보를 취합한 예상대로의 총 정리라 할 수 있다.

이번 주에 나온 하원 보고서는 이것만이 아니다. 하루 앞서 민주당의 정보위 보고서를 겨냥한‘사전 반박’용 공화당 보고서도 공개되었는데, 솔직히 그 내용이 더 궁금했다. 탄핵 청문회 안팎에서 회자되어온 ‘옹호할 수 없는 것을 옹호’하는 데 대한 호기심이다 : 도대체 공화당은 명백하게 드러난 대통령의 ‘대가성 거래’를 무슨 말로, 어떤 논리를 펼쳐가며 두둔할 수 있을까.


발췌 보도된 공화당 보고서의 주장은 합리적 옹호라기보다는 궁색한 변명에 가까웠다. 진보 미디어들이 ‘조크에 불과한 웃기는 보고서’ ‘트럼프 면죄부 위한 현실 부정’이라고 비판한 보고서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우크라이나 관련해 트럼프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2016년 트럼프 당선을 무효화시키려는 민주당의 시도일 뿐이다.”

보고서는 주장했다 :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의 2016년 미 대선 개입과 조 바이든 부패에 대한 수사를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요청한 것, 맞다. 그러나 백악관 회동이나 군사원조에 대한 대가성 요구 아니다. 우크라이나의 부패 역사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갖고 있는 트럼프가 군사원조를 ‘주저한 것은 전적으로 신중한’ 처사였다….

‘차고 넘치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아웃사이더’ 대통령의 외교정책에 반대하는 기득권 관료세력 ‘딥 스테이트’ 내 적들의 쿠데타로 치부하는 한편, 공화당 상원 정보위가 ‘근거 없다’고 결론지은 우크라이나의 대선 개입설을 거듭 거론하고 있다.

전·현직 외교관들 및 트럼프 백악관 관리들의 직접 증언을 추측과 풍문으로 일축하고, 트럼프와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의 통화기록을 비롯한 수많은 증거들을 무시하며, “민주당의 어떤 주장도 증명되지 않았다”는 주장으로 조사를 통해 보고 들은 모든 것을 허구로 몰아갔다.

트럼프의 ‘부적절한 행동’조차 시인을 거부하는 등 과잉 두둔에 오히려 설득력이 없어진 공화당의 이 현실 무시 보고서는 두 가지를 시사한다고 CNN은 분석했다.

하나는 탄핵정국에 대한 공화당의 자신감이다. 민주당의 강력한 탄핵 추진에도 불구하고 친 트럼프 연합은 건재할 것이며, 양극화된 현재의 미국에선 대통령이 축출당하는 정치 지각변동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폭탄’으로 예상되었던 고든 선들랜드 유럽연합 대사의 ‘대가성 거래’ 확인 증언도 여론의 향방과 의회의 정치지형을 바꾸지 못하는 것을 보며 공화당은 탄핵절차에서 당파적 전선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더 힐도 지적했다.


미트 롬니와 수전 콜린스 등 중도파 공화 상원의원들이 상원의 탄핵 표결 입장에 대해 함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하원 공화 지도부에 표 단속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하원 탄핵안 표결이 실시될 경우 단 하나의 공화표 이탈도 막아야 한다는 다짐이다.

하원의 공화당 단합이 상원 탄핵재판에서의 공화 단합에 절대적 영향을 줄 것이며 당파대결의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탄핵정국에서 공화당의 승산이 높아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양극화에 의존한 자신감 못지않게 공화당 보고서에서 확실하게 드러난 또 한 가지는 ‘트럼프의 이미지로 탈바꿈한 공화당’이다.

사실여부엔 별로 개의치 않는 트럼프의 말 바꾸기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보고서에서 보여주었듯이 “트럼프에겐 아무 잘못도 없다”는 주장을 전제로 한 공화당의 전략은, 지금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사사건건 탄핵절차의 트집을 잡으며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공화당 정치인들의 집단적 IQ는 ‘침략당한 군사동맹을 위해 의회가 승인한 군사원조를 정적에게 흠집 내려는 목적으로 보류시킨 정치가’라는 ‘옹호할 수 없는 것을 옹호’하려 할 때마다 하락하고 있다”는 비아냥도 들리고, 워터게이트 때 닉슨을 옹호했던 공화의원들의 일생 낙인을 상기시키며 “역사의 심판을 두려워하라”는 경고도 나왔다.

그러나 당장 정치생명 보전이 다급한 공화의원들에겐 대통령의 ‘부적절한 행동’에 눈감는 것이 민주통치에 어떤 폐해를 남길지에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는 듯 보인다. 정치해설가 조 락하트의 표현대로 “들켜도 잡아떼면 그만”이라는 트럼프 독트린에 모두가 굴복한 것일까.

팩트나 논리에 개의치 않는 ‘트럼프를 위한 공화당의 변명’은 한참 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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