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럼프 vs‘바이든? 워런?’

2019-10-17 (목) 12:00:00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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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밤 3시간에 걸친 민주당대선 경선 후보토론의 하이라이트는 엘리자베스 워런의 호된 ‘선두주자 신고식’이었다. 사방에서 거센 공격이 날아들었다. 대규모 정치·경제 개혁을 주창하는 진보파 주자 워런을 겨냥한 주로 온건파 주자들의 무차별 펀치였다.

‘메디케어 포 올’의 재원마련에서 중산층 증세 여부를 추궁한 피트 부트저지는 중산층의 “경비를 낮출 것”이라는 말로 “예/아니오”라는 대답을 피해간 워런을 공격했고 “플랜과 몽상은 다르다”고 워런 정책들의 문제점을 지적한 에이미 클로버샤는 “현실을 직시하라”고 충고했다.

베토 오루어크는 부유세 등 워런의 정책은 ‘징벌적’이며 서로를 맞서게 하는 분열적이라고 강력히 비난했으며, 카말라 해리스는 트럼프의 트위터 계정 중단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다그쳤고 조 바이든도 정책을 추진하려면 ‘막연한’ 아이디어만으로는 안 된다며 좀 더 솔직하라고 촉구했다.


집중 공세 대상이 지금까지 유일한 선두주자였던 조 바이든에서 공동 선두주자로 새로 등극한 워런으로 바뀐 것이다. 공격 초반 당황한 듯 보였던 워런은 곧 반격에 나섰다. 별로 휘청대지도 않았다. 공격에 일일이 반박할 기회가 주어져 오히려 발언시간이 늘어난 이득까지 챙겼다.

그러나 여름부터 순풍 속 상승세를 유지해온 그에겐 첫 역풍이었다. 상처도 남았다. 온건파 주자들의 공격에 설득력이 있었다고 평가한 데이빗 거건 하버드대 교수는 “그들이 그처럼 쉽게 워런의 방패를 뚫을 수 있다면 트럼프는 불도저로 밀고 들어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뒷전으로 밀려난 바이든, 심근경색에서 회복 후 더 강해진 버니 샌더스, 생존작전 치열했던 중위권 후보들의 명암이 교차되면서 경선의 새로운 국면을 알린 토론에서 눈길을 끈 순간의 하나는 ‘바이든 대 샌더스+워런’으로 온건파 대 진보파 대립의 단면을 보여주었을 때였다.

캠페인 시작부터 그랬듯이 바이든은 자신이 공화당과 협조해 일한 경력이 무당파나 일부 공화당 유권자들에게 어필할 것이라며 과격한 후보는 트럼프 재선을 허용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고 워런과 샌더스는 담대한 정책으로 민주당 표밭을 확대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돈 많이 들고 실행 힘들어도 대규모 변화 후보를 선호하는가, 돈 적게 들고 실행 용이한 점진적 변화 후보를 선호하는가 - 최근 월스트릿저널/NBC 조사에서 민주당 유권자들은 56% 대 40%로 대규모 변화를 택했다. 그러나 같은 조사에서 전체 유권자들은 반대로 선택했다.

누가 최강의 트럼프 대항마인가를 절대과제로 삼아온 이번 민주당 경선에서 그 어느 때보다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는 진보파 대 온건파 당내 대립의 기수들은 현재(앞으로 바뀔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워런과 바이든이다.

대규모 청중이 열광하는 유세, 뛰어난 모금 실적, 다양한 개혁정책, 발군의 토론 실력, 흠집 부담 없는 짧은 정치경력의 장점들로 상승세인 워런은 그러나 끈질기게 부각되는 ‘당선가능성’에 발목이 잡혀있고, 절대적 지명도와 친화력, 본선에서 어필할 중도노선으로 출발부터 선두주자였던 바이든은 잦은 말실수와 빈약한 토론 실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에서 비롯된 트럼프 대통령 탄핵조사 이후 처음이었던 이번 토론은 바이든에게 아들 헌터의 우크라이나 관련 의혹을 말끔하게 해소하며 강력 대응해야했던 기회였으나 또 놓치고 말았다.

헌터는 바이든이 부통령 시절 우크라이나 에너지회사에서 고액의 보수를 받는 이사로 재직했었고 트럼프는 바이든이 “아들 위해, 이 회사를 수사하려던 당시 우크라이나 검찰총장 해고를 압박했다”며 현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바이든 부자에 대한 조사를 부탁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바이든은 제대로 된 해명 없이 아들과 자신은 “잘못이 없다”는 말로 토론 사회자의 질문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피해갔다. 지우기 힘든 약점을 또 하나 안고가야 한다는 뜻이다.

이념적 야망이나 웅변적 말솜씨는 부족해도 인간적 품위와 정치경험, 경합주 스윙보터들에 대한 호소력, 그리고 합리적 참모들을 갖춘 그의 본선 경쟁력을 믿어온 ‘말 없는 다수’의 지지가 이번 토론을 계기로 얼마나 하락할지는 당장 예측하기 힘들다.

토론 중 워런에게 집중된 공격이 선두주자 등극의 대가이듯이 트럼프의 맹공격에 대해서도 바이든은 “이유는 단순하다. 그를 이길 수 있는 사람, 그가 두려워하는 사람은 나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16일 현재 그의 전국지지율 평균은 29.4%로 아직 워런보다 6포인트 앞서는 1위다.

“트럼프 진영이 꿈꾸는 이상적인 민주당 후보는 워런”이라는 악시오스의 최근 보도가 바이든의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이들이 경합주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시험해본 가장 성공적 민주당 공격전략이 ‘사회주의자!’였으며 사회주의자로 채색하려면 워런이 바이든보다 훨씬 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 바이든’이 될 것인가, ‘트럼프 대 워런’이 될 것인가. 아직 경선투표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이미 관심은 본선에 집중되어 있는 이상하고 절박한, 그래서 눈을 뗄 수 없는 선거전이 펼쳐지고 있다.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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