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글의 추억

2019-10-10 (목) 08:00:32 우병은 / 스털링,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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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9일은 글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서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들어 반포하신지 573년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쓰이는 로마자는 물건의 모양을 그려 사용하다가 지금의 알파벳으로 변화된 것이고 한자도 역시 물건 모양을 그려 오다가 지금의 한자로 변화된 것이지만 한글은 오로지 소리 낼 때 입모양을 그려 만들어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창제할 때 28글자 가운데 4글자는 없어지고 24자로만 세상의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다는 게 내가 생각해도 기상천외다. 서당에서 한자를 배우셨던 아버님께서 한글을 따로 배우지 않고도 한글을 아셨다고 해서 학교에서 한글을 배운 나로서는 어린 아이가 먹는 걸 안 가르쳐 줘도 본능적으로 아는 것처럼 한글도 본능처럼 아셨나 싶었는데 한자 옆에 한글로 토를 다는 걸 보고 알게 되셨다고 한다. 이렇게 쉬웠으니 옛날에 한글을 글로 여기지 않고 여자들이나 쓰는 안글이라고 천대했나 보다.

일제 때 나온 한글 성경에 자음 밑에 점 하나 있는 글이 뭔지 몰라 물으니 모음 ㅏ와 ㅗ사이 중간 소리 나는 글자라고 해서 그 중간 소리를 나는 낼 수가 없었다. 초성에 ㅅ자와 ㅂ자가 붙어 있는 글자를 보고 기스브다로 읽는 건지 알 수 없어 물은 즉 기쁘다로 가르쳐 주셨는데 교과서엔 그런 글자가 없었고 한글 창제에 관한 공부를 할 옛날에 이런 글이 있었다고 배웠다.


고등학교 다닐 때 멋을 많이 내는 선생님이 칠판에다 뿌리라는 글자를 쓰시는데 ㅂ자 두개를 병렬하시지 않고 2인 3각처럼 밑으로 내려오는 획 4개를 3개로 해서 쓰신 걸 보고 참 멋있다 속으로 생각했다.
40년 전 토요학교에 가서 한글을 배운 딸아이가 6살이었을 때 아버지 이름을 쓰라는데 우사병이라 써서 점수를 못 받았다. 왜 우사병이라고 썼느냐?고 물으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아빠 부를 때 우사병이라 부르데요” 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여러 해가 지나 이사를 했다. 이삿짐 상자에 이름을 쓰는데 아빠 책이라고 쓰는 걸 오래전에 배웠던 글자를 기억 못해서 ㅂ자를 두개 나란히 쓰질 않고 아래위로 ㅂ자를 놓아 언젠가 이런 식으로 한글이 변하지 않겠나 싶었다. 과거엔 어깨가 넓고 빵빵한 사람이 1등 신랑 신부감이었는데 지금은 마른 사람이 1등 신랑 신붓감이듯 시대는 변한다.

<우병은 / 스털링,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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