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공화당의 ‘탄핵 딜레마’

2019-10-03 (목) 12:00:00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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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조사에 올인한 민주당 하원과 트럼프 행정부의 대결이 전면전으로 확대되면서 대통령의 운명을 결정해야 하는 공화당 상원의원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하원의 트럼프 대통령 탄핵안 통과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상원의 ‘트럼프 구하기’도 기정사실로 강조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좀체 오를 줄 모르던 트럼프 대통령 탄핵지지 여론이 우크라이나 스캔들 이후 지난 며칠 바짝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탄핵조사는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앞으로 몇 주, 몇 달 진행될 조사에서 대통령의 위법 혐의가 더 해질 경우 재선 앞둔 상당수 공화의원들, 특히 경합주에서 이미 취약한 일부 의원들의 입지는 더욱 흔들릴 수 있다.

민주당이 탄핵 추진으로 내년 선거에서 하원 주도권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한편에서 민주당의 상원 탈환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란 기대도 감지되고 있는 배경이다.


민주당이 상원을 탈환하려면 현 의석을 유지하면서 최소 공화 의석 3석을 빼앗아 와야 한다. 민주 상원의원은 12명만 재선을 치르는 데 반해 공화당은 23명이나 된다. 이미 콜로라도의 코리 가드너, 애리조나의 마시 맥샐리 등 최소 7명 공화의원들이 타겟으로 떠올랐다.

‘위법 혐의 받는 자당 대통령’에 대한 지지여부를 공개 표명해야 하는 상원의 탄핵 표결은 그렇지 않아도 힘든 이들 공화의원들에게 “매우 어려운 선택이 될 것”이라고 지적하는 민주 상원의원들은 탄핵이 공화당 상원의 ‘지뢰밭’이 될 것으로 예상(혹은 기대)한다.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정적 조 바이든 부자의 비리의혹 조사를 압박했다는 사실이 내부고발자에 의해 폭로되면서 불거진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점화된 ‘탄핵’이 워싱턴 정가를 뒤덮으면서 공화당 의원들의 반응은 몇 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통화로 대통령을 탄핵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라며 트럼프 철벽방어에 앞장 선 상원 법사위원장 린지 그레이엄과 ‘민주당 역풍’을 경고한 존 던 등 강경파도 있고 “중대 문제”라며 신중하게 우려를 표명하는 미트 롬니, 벤 새스 등 비판 보이스도 극소수이지만 나오긴 했다.

상당수는 언급자체를 회피한다. 통화 녹취록과 내부고발 보고서를 통해 트럼프의 권력남용 혐의가 얼마나 방어하기 힘든 상황인가를 알지만 자신의 정치생명을 위협할 공개반대에 나설 생각까지는 없는 것이다. ‘확증’을 근거로 ‘권력남용 저지’를 내세우는 민주당에 비해, ‘보복성 트럼프 죽이기’를 강조하라는 지침의 설득력 약한 공화당 메시지도 마땅찮은 말없는 다수다.

상원의 ‘탄핵재판’ 표결이 무기명 비밀투표라면 공화의원 “30명이 찬성할 것”이란 공화당 전략가의 발언에 전 공화당 상원의원 제프 플레이크가 “아니다, 최소한 35명은 될 것”이라고 한 술 더 떴다는 뉴스위크의 보도가 상원 공화당의 딜레마를 전해주고 있다.

상원 규칙은 하원이 대통령을 탄핵시키면 상원이 바로 다음 날 처리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구체적 절차에 대한 폭넓은 재량권을 가진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대표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공언했으니 재판형식의 탄핵심의와 표결은 (트럼프 지지파들이 제안할지 모를 기각 발의가 통과되지 않는 한) 진행될 것이다.


100명 상원 전체의원 중 3분의 2가 찬성해야 트럼프의 대통령 직이 박탈된다. 그것은 현재 공화 53명, 민주 및 무소속 47명으로 구성된 상원에서 최소 20명의 공화의원들이 반란을 일으켜야 한다는 뜻이다. 탄핵조사 전개에 따라 반란표가 나올 수 있겠지만 드라마틱한 변수가 터지지 않는 이상 현 양극화 정국에서 20명 집단 반란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아직은 양당 모두의 공통된 분석이다.

탄핵지지 여론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론읽기도 시각에 따라 다르다. 이번 주 발표된 퀴니피액 대학 조사의 경우, 탄핵조사 지지엔 52%가 찬성하지만 탄핵 자체 찬성은 47%에 그쳤으며 민주당 하원의 조사가 ‘당파정치’를 기반으로 움직인다는 응답이 56%로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는 응답 36%보다 훨씬 높았다.

특히 공화당 응답자의 경우 대부분 조사에서 트럼프 지지율은 80~90%로 여전히 높다. 많은 공화의원들에겐 전체 여론의 탄핵지지율 상승보다 더 중요한, 트럼프에게 등 돌리지 못하게 하는 절대적 수치다. 경선 결과를 좌우할 핵심 극우 유권자들의 표심이기 때문이다.

하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될 경우 상원 공화당의 결단에 의한 ‘트럼프와의 결별’이 ‘링컨과 레이건의 그랜드 올드 파티’ 공화당을 살리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전통 보수진영의 경고가 나오고 있지만 당장 정치적 생존이 급한 공화의원들에겐 마이동풍에 불과하다. 1974년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탄핵에 직면한 공화당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이끌어냈던 공화당 의원들의 ‘사명감’을 기대하기엔 현재의 정치상황이 너무 달라진 것일까.

상원이 ‘무죄 판결’로 트럼프를 구해낸다 해도 마지막은 아니다. 상원 표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실시될 선거를 통해 결국 진짜 최후의 심판은 유권자들이 내리게 될 것이다.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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