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테보리 국제도서전 성황...한강의 새 소설 ‘흰’ 소개, 최대 세미나장 꽉 채우고 수십명 아쉬운 발걸음 돌려
▶ 김언수·진은영·김금희 화제, 한국 문학의 변방이던 북유럽에서 관심 폭발
한국-스웨덴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가하는 2019 스웨덴 예테보리 국제도서전이 지난달 26일부터 29일까지 예테보리 전시·회의 센터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연합]
“한강의 작품은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다루기 때문에 읽기 쉽지 않지만, 철학적이고도 미학적인 중요한 질문들을 던집니다.”(샬롯테·사서)
“스웨덴 소설은 장르소설과 리얼리즘 소설의 구분이 확실해요. 하지만 한강의 소설은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사회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매력적이에요.”(요한나·대학생)
“시적인 그녀의 언어들은 영혼을 건드려요. 너무나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켜서, 한강의 소설을 읽고 난 뒤 한동안은 다른 소설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리사·교사)
지난달 26일부터 29일까지 열린 스웨덴 예테보리 국제도서전에서 가장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킨 주인공은 한국이었다. 올해 주빈국으로 초대된 한국 측이 진행한 20여개의 세미나와 북토크는 연일 문전성시를 이뤘다. 특히 스웨덴 현지에 한국 작가 중 유일하게 세 권의 소설이 번역 출간된 한강 작가에 대한 현지의 관심은 놀라울 만큼 뜨거웠다. 1985년 시작된 예테보리 도서전은 유럽에서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서전으로 북유럽 출판 시장 진출의 관문으로 여겨진다.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에 이어 세 번째로 스웨덴에 번역 출간된 한 작가의 새 소설 ‘흰’을 소개하는 26일 오후 세미나에는 행사 시작 15분 전부터 스웨덴 독자들로 긴 줄이 만들어졌다. 도서전 행사장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인 행사장(375석)은 한 자리도 남기지 않고 꽉 찼다. 전날 시인 진은영과 한 작가가 함께 진행한 ‘사회 역사적 트라우마’를 주제로 다룬 세미나 역시 40여명의 현지 독자들이 행사장(120석)에 들어서지 못해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다.
2007년 김영하 작가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의 영문판 출간, 2011년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 영문판의 초판 10만부 인쇄, 2016년 한 작가의 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까지, 지난 10년 간 한국문학은 세계문학시장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숨가쁘게 달려왔다. 그 중 북유럽은 한국문학이 가장 늦게 도착한 지역이었다. 1976년 김지하의 시집 ‘오적’을 시작으로 2019년까지 단 33권만이 번역 소개됐을 뿐이다. 2000년대 전까지는 단 네 작품만이 번역됐고 이후에도 매년 1~2권 출간되는 데 그치는 수준이었다. 2016년 ‘채식주의자’이 영미권에서 화제를 모으고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북유럽에서도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모양새다.
스웨덴에서 확인한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은 다종다양했다. 지난해 스릴러 소설 ‘설계자들’이 현지에 번역된 김언수 작가의 경우 전통적인 스릴러 소설 강국에 진출한 한국 토종 스릴러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김 작가는 한 작가과 더불어 올해 도서전 주최측이 꼭 직접 방문해줄 것을 요청한 작가 중 한 명이다. 28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 작가는 “한국의 국력이 높아짐에 따라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문학 역시 그 덕을 보고 있는 것 같다”고 한국문학의 인기 비결을 분석했다.
한국은 이번 도서전에서 ‘인간과 인간성’이라는 대주제 아래 ▲사회역사적 트라우마 ▲국가폭력 ▲난민과 휴머니즘 ▲기술문명과 포스트휴먼 ▲젠더와 노동 ▲시간의 공동체 등 오늘날 한국사회와 한국문학을 관통하는 주제들로 세미나를 구성했다. 현지 독자들에게는 친숙하지 않은, 한국의 정치사회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개별 세미나에 대한 관심은 높았다. 28일 김금희 작가가 진행한 ‘한국문학의 페미니즘과 그 미래’에서는 한국 사회의 여성 혐오와 비혼주의가, 27일 진은영 시인과 한강 작가의 세미나에서는 세월호 참사가 화두에 올랐다. 김금희 작가는 27일 기자간담회에서 “현지 독자들은 낯선 한국의 사회 현실에서 오히려 흥미로움을 느끼고, 자신의 삶과 다른 방식의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통로로 문학을 취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다양한 영역에서 촉발되고 있는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은 현지 출판물과 대학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스웨덴의 대표 문예지 10TAL은 최근 한국문학 특집호를 펴냈다. 1년에 3차례 간행되는 스웨덴 문단의 대표적 문예지로, 이번 한국문학 특집호에는 김혜순 시인, 배수아, 김금희, 한강 작가 등 한국 문인의 작품과 설명을 심도 깊게 다뤘다. 스톡홀름대학의 한국어과 신입생은 2014년 25명에서 현재 60명으로 2.5배가량 늘었다.
김사인 한국문학번역원장은 27일 기자간담회에서 “한국문학에는 삶과 세계를 감각하는 역동성이 있다”며 “이러한 한국문학의 수준이 세계적 보편성과 설득력을 갖게 된 것 같다”고 한국문학의 부상 이유를 설명했다. 세계 문학시장을 향한 한국문학의 노크는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내년에도 모스크바 국제도서전과 타이페이 국제도서전에 주빈국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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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테보리=한소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