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개스 가격 통제의 교훈

2019-09-24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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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OPEC은 유가를 배럴 당 3달러에서 12달러로 대폭 인상했다. 1973년 ‘욤 키푸르’ 전쟁 때 서방이 이스라엘을 지원한 데 대한 보복이었다. 이에 따라 미국의 개스 가격도 폭등했고 국민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었다.

그 대책으로 나온 것이 닉슨 행정부의 개스가 동결이었다. 싼 가격에 기름을 넣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국민들은 새로운 문제에 봉착했다. 기름을 넣으려 해도 기름이 없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책정된 가격으로 팔아봐야 이익이 남지 않는 석유회사와 주유소가 판매량을 대폭 줄이면서 운전자들은 탱크 한번 채우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야 했고 주먹다짐을 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구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은 암시장에서 시가의 몇배에 달하는 돈을 주고 기름을 사야 했다.

개스가 통제의 무용성을 깨달은 카터 행정부는 그 집행을 대부분 유예했고 레이건 행정부는 이를 폐지했다. 개스가가 수요공급의 원리에 따라 정상가격을 회복하면서 시민들은 고통을 겪었지만 기업도 소비자도 이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개스 거즐러’로 불리던 대형차 대신 마일리지 좋은 소형차를 타기 시작했고 단열성이 좋은 재료로 집을 짓기 시작했다. 석유회사는 유전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80년대 초 배럴 당 40달러가 넘던 유가는 1985년 5달러대로 폭락했다. 고유가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가격통제가 아니라 시장원리에 맡기는 것이란 교훈을 미국민은 그 때 얻었다.

똑같은 원리가 적용되지만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분야가 있다. 렌트라 불리는 주택 임대가다. 현재 가주민들은 평균 소득의 30%를 렌트비로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평균이고 LA 등 대도시 일부 지역은 50%를 내는 곳도 많다.

높은 렌트비로 고통 받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이를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 최근 가주의회가 렌트 인상 규제법안을 통과시킨 것은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뉴섬 주지사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 법안은 시행이 확실시 된다.

그러나 이 처방은 개스가 상승대책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것이다. 렌트 상승의 근본원인은 주택공급이 수요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교통체증과 환경오염 등을 우려하는 주민들 반대로 지방정부가 주택신축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는데다 신축주택에 대한 태양발전패널 설치 의무화, 천연개스 사용 규제 등 각종 규제로 주택 건설비용을 높여놨기 때문이다.

이런 근본문제를 그대로 두고 렌트 규제만 강행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뻔하다. 우선 아파트 건축이 줄어들 것이다. 새 법은 연 렌트 인상폭을 인플레 플러스 5%로 제한하고 건축 연한 15년 이하 건물에 대해서는 이를 면제해주도록 하고 있으나 이 규정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그런 불안한 상황에서 건축회사들은 투자를 꺼리게 된다. 그나마 기존 아파트를 가지고 있던 소유주들도 가능하면 이를 콘도로 전환하는 방안을 연구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파트 공급은 더 줄어들고 방 구하기는 더 힘들어진다. 작년 주민발의안에 부쳐졌던 렌트 규제안이 압도적 표차로 부결되고 이번 규제안 통과에 공화당은 물론이고 민주당 의원 사이에도 반대표가 나온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LA 카운티정부는 비독립 지역 내 1995년 이전 지어진 아파트에 대해서는 렌트 인상을 연 3%로 제한하는 조례를 추진 중이다. 작년 렌트 규제 주민발의안을 지원했던 AIDS 헬스케어 재단은 주 렌트 규제법으로는 불충분하다면 더 엄격한 주민발의안을 내년에 다시 주민투표에 부치겠다고 나오고 있다.

이런 안들은 당장 높은 렌트비로 신음하는 주민들에게는 희소식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미 경제학회 회원 등 경제학자 464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93%가 렌트 규제는 임대주택의 양과 질을 악화시킨다고 답했다. 렌트 규제론자들은 “폭격을 제외하고 도시를 파괴하는데 렌트 규제만한 것은 없다”는 스웨덴 경제학자 아사르 린드벡의 말을 기억하기 바란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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