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진퇴유곡의 문재인 외교

2019-07-2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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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중국에 대해 국내법과 국제적 의무를 준수하고, 신장위구르 자치구와 중국 전역에서 종교와 신념의 자유를 포함한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

100만 명이 넘는 위구르족과 다른 소수민족 이슬람교도들이 ‘재교육’이란 명목으로 강제수용소에 감금됐다. 시진핑 치하 중국에서 자행되고 있는 이 미증유의 인권탄압사태에 대해 유엔인권이사회 소속 국가 대사들이 채택한 공개서한 내용이다.

유엔인권이사회는 모두 47개국으로 구성돼 있다. 그 중 22개 국가 대사들이 공개서한에 공동으로 서명, 처음으로 중국정부의 만행을 규탄하는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어느 나라들이 공개서한에 서명을 했을까. 같은 회교 형제국가들일까. 회교 국가들은 한 나라도 참여하지 않았다.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를 통틀어 중국의 인권탄압 규탄에 동조한 나라는 일본이 유일하다. 나머지 서명 국가들은 모두 서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들이다.

이 공동서한이 나온 지 이틀 후 다른 37개 국가들은 정반대 내용의 공동서한을 채택했다. ‘중국은 인권에서 놀라운 성취를 이룩했다’는 것이다. 이 중국 지지 공동서한 서명국들은 하나 같이 권위주의 형 국가들이다. 북한,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등.

2019년 7월 중순의 시점 유엔이라는 국제외교무대에서 벌어진 이 해프닝. 무엇을 말해 주고 있나.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의 권리를 적극 옹호하는가에 따라 선진국과 후진국으로 구분될 수 있다.” 아메리칸 엔터프라이즈 인스티튜트의 맥스 프로스트가 이끌어 낸 결론이다.

또 다른 하나는 ‘기-승-전- 중국’이라고 할까. 워싱턴의 관심, 더나가 전 세계의 관심은 중국이 펼치고 있는 공산 전체주의 프로젝트를 어떻게 견제하느냐에 쏠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대한민국, 특히 문재인 정부가 이끄는 ‘대한민국’호의 좌표다. 일본과의 경제전쟁을 앞둔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비쳐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도 47개국 유엔인권이사회 국가 중 하나다. 그렇지만 중국의 인권탄압규탄 공개서한서명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왜. ‘국익을 위해서는 모든 도덕적 판단은 뒤로하고 악마와도 손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 현실주의 외교라 하던가. 이 노선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딴은…’이란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다. 꽤나 어려운 지정학적 환경을 맞은 게 대한민국의 오늘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인권이야기만 나오면 움츠러든다. 특히 북한 인권문제가 그렇다. 거기다가 그 국익이라는 것도 그렇다. 그 정의가 협소하고 근시안적이다. 그런데다가 과잉신념의 잣대로 이해된다. 그럴 때 그 국익추구는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국제정치무대에도 시빌리티(civility-질서를 존중하는 행동방식)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걸 무시하면서 오직 ‘우리나라만의 특수상황’만 들먹인다. 그 결과 ‘명색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에, 걸핏하면 촛불정신을 내세우는 ‘문재인호의 대한민국’은 외교적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뭐랄까. 3류 후진국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할까.

그 한 케이스가 문재인대통령의 유럽순방외교다. 가는 곳마다 마치 김정은의 특사라도 된 양 대북제재완화를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는 열정(?)을 보였다.

문대통령은 ‘우리민족끼리라는 렌즈’로만 북한을 바라보고 있다. 국제사회의 보편이고 표준의 시각에서 보면 김정은은 핵위협이나 해대는 불량집단의 수괴일 뿐이다. 그러니 인권, 민주주의, 종교의 자유 등에 민감한 유럽국가 지도자들에게 그런 문대통령은 어떻게 비쳤을까.

세계적 보편성에서 멀어진 문 대통령의 사고와 행보는 외교적 대참사를 불러오고 만 것이다.

아베 정부의 반도체 소재수출규제로 촉발된 한일갈등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각은 어떨까. 한국은 경제력, 외교력, 소프트파워에서도 모두 열세다. 때문에 일본 편이 압도적이라는 것이 냉정한 판단이다. 아시아 국가들의 시각이 우선 그렇다. 주요 여론 조사에 따르면 아시아 각국이 추구하는 롤 모델은 미국, 아니면 일본이다. 한국은 아예 실종상태다.

미국의 입장도 큰 차이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외교는 ‘오로지 일본과 대결하는 구도에서만 세상을 보는 감정적 외교’로 워싱턴에 각인돼 왔다. 그런데다가 문재인 정부는 북한 핵 폐기 전략에서 미국과 엇박자만 내왔다. 그런 마당에 일본과의 외교문제에도 적폐청산의 논리로 일관해왔다.

“이번의 이슈에서는 미국은 일본편이다.” 아시아타임스의 진단이다. 미국이 산파역할을 한 1965년의 한일청구권협정을 문재인 정부가 깬 데 대해 워싱턴은 내심 진노하고 있다. 또 사드배치문제로 중국이 경제제재를 가했을 때는 눈치만 보던 문재인 정부가 일본에 대해서는 즉각 WTO 에 제소한데 대해서도 상당히 못마땅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의 고민은 미국이 사태에 개입해 일본을 두둔할 때 문재인정부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데 있다. ‘중국으로 노선을 이탈’할 수도 있다는 것이 예상되는 반응이다. 그러니까 나토회원국의 일원인 터키가 러시아편으로 돌아선 것 같은 가능성도 있다는 거다.

무슨 말인가. 문재인 외교는 대한민국을 국제적 진퇴유곡의 상황으로 몰고 왔다는 것이다. 그 정황에서 지소미아(GSOMIA-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파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일각에서의 진단으로 한미동맹전선에 커다란 균열이 예상된다는 불길한 전망도 뒤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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