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 영원히 사랑하게 하소서’ 꽃들이 진 자리엔…

2019-07-19 (금)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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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가이드 Suicide Rock (7528’)

‘우리 영원히 사랑하게 하소서’ 꽃들이 진 자리엔…

Humber Park 쪽에서 줌렌즈로 본 Suicide Rock.

‘우리 영원히 사랑하게 하소서’ 꽃들이 진 자리엔…

Deer Springs Trail 의 갈림길에 있는 이정판.



‘우리 영원히 사랑하게 하소서’ 꽃들이 진 자리엔…

Deer Springs Trail의 어느 구간.



오늘 찾아가고자 하는 산은 ‘Suicide Rock’이다. 우리말로 하자면 ‘자살바위’ 또는 ‘자살암’이라는 이름이 될텐데, ‘자살’이라는 말에서 오는 느낌이 스산하여 산행지로 썩 그렇게 매력적으로 생각되지 않을 수 있겠다. 그러나 사실은 이곳을 올라가는 등산로도 대단히 아름답고, 또 이 정상의 바위위에 올라섰을 때 보게되는 전망은 실로 아찔한 느낌이 들면서도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되는 아주 매력적인 산행지이다.


자살과 관련된 절벽으로 한국의 부여에 있는 낙화암을 생각해 본다.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게 패배하여 멸망되면서 삼천궁녀라고 표현되는 수많은 백제의 궁녀들이 정절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 올라 몸을 던졌다는 비극적 전설을 지니고 있는데, 그래도 우리는 이를 ‘자살암’이라고 하지않고 ‘낙화암’이라고 부른다. 참혹했던 비극적 사실을 꽃잎이 떨어지는 것에 비유하여 다소 처연하면서도 아름다운 표현으로 승화시킴으로써, 끔찍함이 아닌 애틋함으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동양과 서양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

옛날 Cahuilla 인디안들이 이 땅의 주인으로 살고 있을 때, 이 부족의 젊은 남녀 한쌍이 서로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그 부족의 추장인 처녀의 아버지가 이들의 결혼을 허락치 않는다. 이를 비관한 두 젊은 연인이 이 바위에 올라 함께 아래로 몸을 던진다. 그래서 Suicide Rock이라고 부른단다. 만인의 심금을 짠하게 울리는 애틋한 전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지역신문의 발행인이면서 화가였고 향토사학자였던 Ernie Maxwell(1911~1994)을 비롯한 이 지역과 인연이 깊은 여러 사람들이 남긴 견해를 살펴보면, 그러한 비극적인 사건이 이곳에서 있었다는 뚜렷한 근거는 없었던 것 같다. 또 누구도 토착 인디안에게서 직접 그런 전설을 들은 일이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항간에 회자되는 그럴싸한 이런 전설보다는 오히려 Helen
Hunt Jackson(1830~1885)여사가 이 지역 Cahuilla 인디안을 주인공으로 1884년에 쓴
소설 ‘Ramona’가 미 전국적으로 공전의 인기를 끌게 된 일이 연원이라는 설이 더 설득
력이 있어 보인다. 즉, 19세기 말에 수많은 미국인들이 소설속의 무대인 이 지역을 찾아
오게 되니, 그들을 의식하여 관광유치용으로 탄생시킨, “아니 땐 굴뚝에서 난 연기”가
아닐까 하는 추측이다. 이 바위에 올라서서 아래를 바라보면 오싹한 전율과 함께 불안
한 죽음의 공포가 느껴지는 것이 보통이므로, 여기에 그럴싸한 상상이 보태져 이런 ‘전
설’의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법하다.

이 바위가 있는 곳은, 크게 보자면 ‘Mt. San Jacinto(10804’)’의 주변 줄기가 되는데, 주봉
인 San Jacinto Peak을 오르는 여러 개의 등산루트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루트라고 말
하는 사람들이 있는, 편도 9.5마일거리의 Deer Springs Trail의 초반 2.3마일 구간을 간
다음에 Spur Trail인 Suicide Rock Trail로 1마일을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된다. 왕복 6.6마
일이 되고 순등반고도는 1900’로 전혀 어렵지 않다. 왕복 4~5시간이 소요된다.

가는 길

LA 한인타운에서 10번 Freeway East를 타고가다 Downtown부근에서 60번 Freeway
East로 진입하여 약 76마일을 달리면 다시 10번 East에 합쳐지는데, 이 지점에서부터
5.8마일을 더 가면 ‘8th St / CA- 243’ 출구가 나온다. 여기서 내린다.


8th St.에서 우회전하여 0.1마일을 가고, Lincoln St.에서 좌회전하여 0.5마일을 가면,
CA-243/San Gorgonio Ave가 된다. 우회전하여 243번 도로를 따라 구불구불 약 23마일
을 가면 길 왼쪽으로 주차공간이 있고, Deer Springs Trailhead 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
다.

그러나 우리는 등산허가를 받기 위하여 이곳을 지나쳐, Idyllwild의 초입에 있는 Ranger
Station까지 가야한다. 이곳의 연락처는 다음과 같다.

San Jacinto Ranger District, 54270 Pinecrest, Idyllwild, CA 92549

Phone: 909-382-2921, Fax: 951-659-2107

무료로 받는 등산허가서를 지니고 난 후에, 다시 조금 전에 지나쳤던 Trailhead로 돌아
가서 그 곳에 주차한다. 등산허가서는 미리 우편이나 Fax로 신청하여 받을 수도 있다.

등산코스

주차한 곳의 뒷쪽 언덕에 올라서면 바로 왼쪽으로 나아가는 널찍한 등산로가 되는데,
고도가 이미 5639’에 이르는 고지대이기 때문에 공기가 청량하고 소나무와 Manzanita
가 뒤섞인 숲이 마냥 푸르다. 대략 2분정도를 걸어가면 왼쪽에 Deer Springs Trail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고, 10분여를 걸으면 Wilderness가 시작됨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온
다. 즉 여기서부터는 입산허가가 있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자연보호구역이 시작
되는 것이다.

이 구간을 지나면서는 특히 다음의 두가지 사실이 눈에 띈다. 하늘 높이 곧게 자라있는 Jeffrey Pine들의 사이사이로, 빨간 줄기가 두드러진 특징인 Manzanita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것이 그 하나이다.

길목의 구비마다 커다란 바위들이, 어느 예술가가 인위적으로 꾸며놓은 것 같은 조형미를 선보이며, 군데 군데 포개져 있거나, 따로따로 놓여있는 채, 주변의 수목들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그 둘이다.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남가주의 산록에 아주 흔한 수종의 하나가 Manzanita이긴 하지만, 이렇듯 아름다운 거목으로 숲을 이루고 있는 점에서는 아마도 이곳이 으뜸이 아닐까 싶다. Manzanita숲이 아름다운 곳 하나를 더 꼽으란다면 이 인근지역에 있는
Tahquitz Peak을 오르는 등산로의 하나인 ’South Ridge Trail’을 들겠다. 우리 한인들이
많이 찾는 Wilson Mountain 언저리의 Zion Mountain 정상부에도 잘 자란 Manzanita숲이
있지만, 이곳과는 그 서식면적이나 개체들의 크기와 수형면에서 결코 비할 바가 아니
라는 생각이다. 매년 5월쯤이면 숲속의 온 Manzanita Tree들이 작은 종 모양의 연분홍
꽃들을 모든 가지들에 다닥다닥 뭉터기로 피워냄으로써 바야흐로 한바탕의 몽환적 황
홀경을 펼치곤 한다.

또 하나 이곳뿐만 아니라 이 산 전체에 큰 바위들이 여기저기 많이 있는 것은 원주민들의 신화에서, 식인악마 Tauquitch(=Tahquitz)와 와신상담의 빼어난 용사 Algoot가 사생결단의 싸움을 할 때, 산 아래의 주민들이 산 위의 악마를 향해 맹렬하게 투석전을 펼친 결과라고 한다.

아름다운 숲길을 1시간 정도를 걸어 2.3마일 지점에 이르면 San Jacinto Summit을 가는 주등산로가 왼쪽으로 꺾이는데, 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우리의 목표인 Suicide Rock은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등산로를 따라 동쪽으로1마일을 가면 된다.

동쪽으로 갈라져 들어가는 Suicide Rock Trail도 이제까지의 Deer Springs Trail처럼 아름답다. 소나무 전나무 참나무 Manzanita 등이 바위들과 잘 어우러져 있는 사이로 걷기에 편안한 등산로가 이어진다. 여기저기 땅에 쓰러진채 세월따라 서서히 흙으로 돌아가고있는 고목들도 나름대로 향기와 운치가 있다. 한가한 마음으로 풍정을 즐기며 가다보면 곧 오른쪽 앞으로 Suicide Rock의 정상부가 눈에 들어온다. 큰 바위들 사이로 소나무들이 무성해 보인다.

조금 더 나아가면 오른쪽의 바위계곡을 타고 내려와 등산길을 횡단해가는 작은 물줄기를 만난다. Marion Creek이다. 걸음을 잠시 멈추고 흐르는 물에 손을 담가보는 것도 좋겠다.

곧 Wilderness 구역의 경계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온다. 등산로는 실로 거대하게 자라있는 2그루의 소나무 사이를 통과한다. 서너사람이 두팔을 벌려 이어도 그 몸체를 다 감싸지 못할 듯한 장대한 소나무들이다. Ponderosa Pine과 Coulter Pine을 부모로 하여 태어난 것으로 본다는 설이 있는 Jeffrey Pine이 아닌가 여겨진다. 미상불 몸통이 굵고 키가 큰 Ponderosa는 아버지이고, 키가 크지 않고 가지와 잎과 솔방울이 풍성한 Coulter
는 어머니가 됐음직한 걸출한 나무라는 상상을 해 본다.

Suicide Rock Trail로 들어와 약 0.8마일을 온 지점에 이르면, 왼쪽으로 잘 균형잡힌 한그루의 Manzanita가 있고 그 바로 뒤로 자그마한 초가집만한 크기로 바위들이 모여있는 지점에 이른다. 잘 살펴보면 왼쪽으로 갈라지는 희미한 등산로를 볼 수 있다. 또 등산길임을 알려주는 Ducks라고 부르는, 등산인들이 두세개의 돌을 쌓아올린 작은 돌탑도 보게 된다. Climber’s Trail인데, Idyllwild의 Humber Park밑으로 연결되는 1마일짜리 등산길이다. 주로 Rock Climber들이 이용하는 코스인데, 약간 경사가 급한 구간이 두세군데 있을 뿐 위태로운 구간은 전혀 없다. 짧은 거리에 짧은 시간으로 Suicide Rock을 오르고 내리기에는 적합한 선택이 되겠는데, 등산로의 아름다움으로는 Deer Springs Trail 루트를 따를 수 없다.

이제 정상까지는 불과 0.2마일쯤이 남았다. 키가 큰 전나무 소나무들이 빽빽히 서있고 바위들도 많아진다. 정상부에 다가갈수록 소나무들이 주종이 된다. 정상은 등산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있고, Suicide Rock이라고 부르는 바위 절벽은 왼쪽 끝으로 있다. 단애의 형세를 이루고 있는 바위들의 가장자리에 서서 아래를 보면 정말 아찔한 현기증이 일어난다. 무섭다. 몇걸음 뒤로 물러서서 차분히 전망을 보도록 한다.

바로 건너편 Strawberry Valley 쪽에 Tahquitz Rock(=Lily Rock; 8000’)과 화재감시대가 있는Tahquitz Peak(8846’)이 우뚝하다. 이곳 Suicide Rock(7528’)은 고도가 다소 낮고 정상부위가 저쪽의 Tahquitz Rock에 비해 평평하다. 저쪽의 암봉 Tahquitz Rock은 고도도 높고 정상부가 뾰쪽한 편이다. 여기가 한국이었다면 ‘견우봉과 직녀봉’ 또는 ‘총각봉과 처녀봉’ 이라는 식으로 이름을 붙였음직하다.

올라온 길을 그대로 되짚어 내려가면 산행이 종료된다. 그러나 이 ‘낙과암’의 산행은, LA에서 갈 경우에 100마일이 넘는 거리를 운전해서 가야하기에, 이 코스만을 등산하고 다시 LA로 돌아가기에는 뭔가 다소 아쉬울만큼 너무 짧은 산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은 2대의 차로 이곳에 와서, 하나를 미리 Humber Park에 주차를 해놓고, 다시 Deer Springs Trailhead로 가서 그곳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Suicide Rock에 오른 후, Climber’s Trail로 하산을 하면(왕복 4.5마일) 곧바로 Humber Park에 닿게 되므로, 여기서 다시 Tahquitz Rock(=Lily Rock)을 올랐다가 내려오면(왕복 2~3마일), 하루에 이곳의 아름다운 2개 암봉을 다 오르는, 더욱 만족스러울 산행을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Climber’s Trail을 포함하는 변형된 산행을 하더라도, 아름다운 Deer Springs Trail 루트를 한번은 꼭 포함시키길 권한다.

정진옥 310-259-6022
http://blog.daum.net/yosanyosooo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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