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럼프의 ‘변덕’ 전략

2019-06-27 (목)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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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뒤집기가 모든 정치가들의 공통점이긴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는 좀 유별나다. ‘변덕’이라는 표현으로도 뭔가 부족하다. 지난주 대이란 공격과 불법이민 체포·추방작전에서 또 위협 경고와 막판 취소가 반복되자 그 이해하기 힘든 속마음을 찔러보는 분석들이 잇달았다.

그의 변덕을 해부하는 용어도 다양하게 동원되었다. 월스트릿저널은 우방과 적대국, 연방의원들, 국가안보 참모들까지 자신의 의중을 계속 추측하게 만드는 것이 ‘도널드 트럼프 독트린’이라고 정의했고, CNN은 호전적인 위협으로 파워 과시를 즐기다 정치적 필요에 따라 한 발 물러섰다 되돌아오는 ‘유턴(U-turn) 정책’으로 설명했으며 블룸버그뉴스는 ‘트위터 허풍이라는 끔찍한 통치방식’이라고 비판했다.

보다 흥미로운 것은 폴리티코의 1인2역 비유다 : “방화범과 소방관의 역할을 동시에 해내는 탁월함을 또 한 번 입증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대이란 보복공격을 명령했다가 작전 실행 10분 전에 이를 취소시켰다. 위기를 막은 것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가 미봉책으로 추슬러 놓고 승리를 선언하는 것이 트럼프의 상투적 방식이라고 전제한 폴리티코는 이번엔 2억 달러짜리 해군 무인정찰기를 격추시킨 이란에 대해 보복공격을 명령하는 복수심에 불타는 신의 모습을 보였다가 “곧 의상을 바꿔 입고 ‘평화의 왕자’를 자처하며 공격을 취소시키는” 드라마를 연출했다고 꼬집었다.

보복공격으로 150명이 사망할 것이라는 보고를 뒤늦게 듣고 마음을 바꿨다고 대통령은 트윗 했지만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대책회의를 하루 종일 주재한 통수권자가 인명피해 가능성을 사전에 몰랐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무드를 180도 바꾼 것일까. 공격을 승인하는 ‘명령권’과 참모들의 주장을 꺾고 이를 취소시킨 결단력을 동시에 즐긴 트럼프가 이번 ‘이벤트’에 상당히 흡족했다는 보도도 나왔고, 끝없는 해외전쟁에 끌려들어가지 않겠다는 대선공약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특히 “대 이란 전쟁은 재선과의 굿바이 키스가 될 것”이라는 폭스뉴스 앵커 터커 칼슨의 경고가 주효했다고 한다.

‘소방관’ 트럼프는 ‘방화범’ 트럼프가 지른 불을 무사히 끌 수 있을까…

애초 트럼프의 이란 핵합의 탈퇴로 불붙은 양국의 힘겨루기는 지난주 1막에 이어 이번 주 미국이 대 이란 경제제재를 강화하면서 2막으로 넘어갔다. 분노한 이란은 ‘백악관은 정신장애’라고 비난하며 정면대응 불사를 천명했고, 트럼프는 미국 공격시 “말살을 의미하는 압도적 힘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협상의 문을 닫은 것은 아니지만 긴장은 고조되고 있다.

트럼프의 1인2역 연출은 물론 처음이 아니다. ‘화염과 분노’를 위협하며 ‘리틀 로켓맨’으로 조롱했던 김정은과 ‘아름다운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된 대 북한관계에서도 이미 목격됐다.

해외정책만도 아니다. 스스로 조성한 위기를 적당히 진화한 후 승리를 선언하는 대통령의 자화자찬은 국경장벽에서 정부 셧다운, 무역전쟁과 특검해고 위협에 이르기까지 국내정책에서도 여러 차례 반복된 바 있다.


우리에겐 특히 그의 단골소재인 ‘이민위기’가 두렵고 아프다. 대통령 취임 1주 만에 입국금지 행정명령으로 공항의 이민위기를 야기시켰고, 그해 가을엔 다카 폐지로 드리머들을 추방위기로 내몰았으며, 엄마와 아기를 떼어놓는 무관용정책 시행으로 시작된 국경위기는 열악한 상태에 방치된 아이들의 참상이 드러나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불법체류청년 추방유예 프로그램인 다카에 대한 뒤집기 정책이 ‘방화범-소방관’ 트럼프의 전형이었다.

자신이 폐지를 선언한 후 ‘사랑의 법’으로 구제하라며 의회에 초당적 대책을 촉구했다가 막상 합의안을 들고 오자 태도를 돌변해 적대적으로 냉대한 것이 지난해 초였다. 그래도 계속 추진되었던 드리머 구제는 지지와 반대를 들락거린 트럼프의 뒤집기에 결국 무산되었고 수십만 젊은 이민자들의 삶은 그의 ‘변덕’ 전략에 볼모로 잡힌 채 여전히 음지에서 서성대고 있다.

이란공격을 중단시킨 다음날인 22일 아침, 트럼프는 한 주 전부터 위협적으로 경고해온 불법이민 대규모 체포·추방작전도 전격 연기시켰다. 재선출정식 전날인 17일 밤엔 핵심 지지층을 의식한 “다음 주 수백만 불법이민 제거작전 시작” 예고가, 21일엔 ‘단속 임박’ 확인 트윗이 올라왔고, 10개 도시 2,000여 가족대상이라는 구체적 보도까지 나왔는데 갑자기 바뀐 것이다.

누가 불을 질렀던 전쟁을 막은 것은 다행이듯이 대대적 단속의 잠정 중단에 수백만명도 안도의 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그러나 반복되는 대통령의 변덕 전략은 불신을 초래해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약화시키고, 국내에선 그의 최우선 타겟인 이민사회를 공포로 움츠러들게 할 것이다. 통치에서 장기적 로드맵과 일관된 정책이라는 ‘안전망’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만들어낸 위기에 불안해하다가 그의 해결 자찬에 박수쳐야 하는 비정상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확실한 대답을 줄 수 있는 것은 ‘투표’뿐이다.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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