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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방송인생 중 오직 라디오에만 전념해온 선성치씨는 방송사에서는 전설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별명도 Mr. Radio 또는 영원한 라디오맨이었다. 또한 평생에 한번이라도 방송국 개국 멤버에 참여했다면 그것은 방송인으로써 크나큰 영광이다. 그만큼 방송국을 창단한다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며 빈틈없는 계획과 새로운 그 무엇을 창조해야 한다는 부담감때문에 많은 장벽에 부딪치기도 한다. 그 어려운 창단 멤버에 3번이나 참여한 선성치씨와 얘기를 나눠 볼 기회를 마련했다. 한국 방송 팝송 DJ 1세대이면서 또한 팝송 1세대 프로듀서인 선성치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방송사의 옛 이야기를 들어본다.
- 한국 방송 초창기 역사를 알고있는 1 세대 방송인을 인터뷰하려고 섭외를 시도했으나 이미 많은 분들은 작고했든가 아니면 고령이라 인터뷰가 거의 불가능 한 상태였는데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해 줘 감사드린다. 건강 유지 비결은?
▶ 허긴 80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렇게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것도 축복이 아닐까 생각한다. 건강을 유지 하는 것은 아마 항상 음악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 방송국에 입문한 계기는?
▶ 그때 음악을 좋아하고 아나운서를 꿈꾸던 나는 고등학교 연극부 활동이 계기가 되어 기독교 방송 학생극회 회원으로 라디오 드라마에 출연 하면서 발을 들어 놓았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문화 방송국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 초창기 한국방송 역사에 대해서 말해 달라.
▶ 한국라디오 방송 시작은 1927년 2월 16일 서울 정동 1번지에서 경성 방송국 이름으로 주파수 690 KHZ 로 처음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여서 하나의 채널을 통해 한국어 방송과 일본어 방송을 교대로 내 보내는 한일 양국어 방송으로 편성되었다. 초기에는 한국어 방송과 일본어 방송이 1대 3, 이후에는 2대 3의 비율로 방송되었다. 그런 후 1973년 3월에 현재의 이름인 KBS 로 바뀌었다. 부산, 대구, 대전 등에서 문화 방송이 생기고 서울에선 동양 방송, 동아방송이 개국했다 .
한국 TV 방송은 1956년 KORCAD 의 HLKZ- TV 가 NTSC 방식으로 세계 15번째 이자 한국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국을 시작했다.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1957년 한국일보 사주에게 양보하여 DBS (대한방송 주식회사)로 개편한 후 1961년 KBS-TV 개국 무렵 채널 9와 제작 요원들을 양도하고 문을 닫았다. 이렇게 하여 KBS-TV가 개국하고 1964년 개국한 DTV가 1965년 11월 JBS와의 합병으로 TBC -TV 이름으로 발족했으며 1969년 8월 교육방송을 허가를 받은 MBC-TV가 1970년 오락 위주의 상업방송으로 완전 전환했다. 제 5공화국 통폐합 정책에 따라 각 방송국이 합병하여 지상파 TV 방송국은 현재 KBS-TV, SBS-TV 그리고 MBC-TV 만 살아 남았다.
- 라디오 전성시대인 1960대에는 많은 스타 아나운서들이 활약 했었는데?
▶ TV가 없던 그 당시에는 라디오가 많은 역할을 담당했다. 그 당시에는 레저 및 오락 시설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라 국민들은 라디오 청취에 많이 의존했다. 각종 공개 방송, 스포츠 중계, 뉴스 그리고 드라마 등등... 따라서 수 많은 아나운서들이 필요한 시대였다. 열거하자면 장기범, 최계한, 강찬선, 임택근, 전여우, 이광재, 강영숙등 기라성 같은 아나운서들이 라디오를 통해 국민들을 사로잡은 라디오 전성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국제 스포츠 중계는 온 국민들이 라디오에 귀를 모으던 시대였다. 축구 대회는 말레이지아에서 열린 ‘메르데카컵 국제대회’ 가 가장 인기였다. 신동파 선수가 활약하던 국제 농구대회도 청취자들의 호응이 좋았고 프로 복싱도 국민들의 관심이 높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홍수환 선수가 1974년 남아 공화국에서 거행된 세계 반탐급 복싱에서 15회 라운드에서 판정으로 이기고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란 말이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리고 1977년 베네수엘라에서 열린 WBA 선수권에서 2라운드 4번 다운 당한 후 3라운드 KO로 승리하여 4전 5기 라는 신화를 남겼을 때 국민들의 환호가 대단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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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