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는 오페라일 뿐이다. 무슨 소리? 오페라는 (그저) 영화가 없던 시절의 영화와 같은 존재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손님없는 오페라, 재미없는 없는 오페라란 그 존재가치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흥행에 성공한 오페라는 모두 훌륭한 영화, 훌륭한 오페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일까? 꼭 그런 것 만은 아닐 것이다. 하나의 대형 히트를 기록한 작품은 각기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특히 오페라의 경우 호평받는 것도 힘들지만 수많은 관객을 끌어모으는 대형 히트까지 기록하는 것은 더 더욱 힘들다. 역사상 가장 히트한 오페라는 어떤 작품들이 있을까? 얼마전 기록을 살펴봤더니 역사상 가장 많이 공연된 작품은 베르디의 ‘춘희(La Traviata)’, 비제의 ‘카르멘’,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등이 꼽혔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이 3대작품이 ‘마술피리’를 제외하고 발표당시에는 오히려 흥행에 대참패를 기록한 작품들이었다는 것이다. ‘마술피리’도 그렇게
대중적이거나 쉬운 작품에 속하는 작품은 아니었다. 결국 오페라라는 것이 장르적 특성상 무엇보다도 작품성이 중요한 것이겠지만 발표 당시부터 엄청난 흥행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던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베르디의 ‘리골레토’가 그것이었다.
베르디(伊, 1813-1901)는 음악적 성과만 본다면 그렇게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긴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극적(劇的)이었고 긴장감이 넘쳤다. 선율미는 아름답지 않았지만 짧고 끊어치는 효율적인 선율로 청중들을 압도했고, 음감은 다소 해괴했지만 긴장감을 유발하며 폭발할 때와 잦아들 때의 타이밍이 절묘하고 우아한 선율미보다는 극에 몰빵하는 선율적 박력이 남성적이고 매력있었다. (인기파트) 테너나 소프라노 보다는 베이스나 바리톤, 알토 등에 역할분담이 많은 것도 베르디 오페라가 주는 순수함과 무게감을 더해주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베르디가 진정한 의미의 오늘날의 베르디로 알려지게 된 시기가 있었으니 바로 오페라 ‘리골레토’를 발표한 뒤 부터였다.
‘리골레토’는 요즘말로 메가히트를 기록한 작품으로 당시까지의 모든 오페라 흥행기록을 갈아치웠다. ‘리골레토’는 극의 내용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음악 부분에 중독성이 있었다. 베르디 오페라를 흔히 After Regoletto, Before Regoletto로 구분하는 것도 ‘리골레토’가 그만큼 흥행은 물론 오페라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난 작품이었기 때문이었다. 내용은 꼽추, 칼잡이, 바람둥이 등 (소위) 막장 인물들은 다 등장하지만 음악이 비범하였고 공감하기 쉬운 극의 흐름도 흠잡을 데 없었다. 특히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꼽추(리골레토)의 복잡한 내면의 갈등이 큰 공감을 샀다.
만토바 공작의 어릿광대 리골레토는 만토바에게 추행당한 여인들의 남편이나 아버지에게 다가가 비웃음을 날리며 자신의 추한 몰골에 앙갚음(?)하는 삶을 이어나간다. 그러나 이러한 리골레토의 모습이 허황된 모습뿐이었다면 극적 공감을 살 수 없었을 것이었다. 리골레토야말로 인간 모두가 가지고 있는 어두운 내면이었고 함정에 빠질 수 밖에 없는 나약한 모습이기도 하였다. 리골레토에게는 숨겨놓은 딸 질다가 있었는데 자신이 그토록 사랑한 질다 역시 만토바의 희생물로 전락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해야만 했던 것이 리골레토의 운명이었자 비극의 진실이었다.
리골레토는 만토바를 저주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제서야 리골레토는 그동안 자신이 조롱했던 모든 여인들의 아버지와 남편의 저주가 자신에게로 쏟아진 것을 깨닫게 되지만 눈물보다는 복수의 화신이 된다. 칼잡이 스파라푸칠레를 고용, 만토바의 시체를 원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딸)질다의 싸늘한 시체라는 이야기. 만토바는 취미로 여인들을 추행하는 난봉꾼이었지만 특히 순수한 여인을 유혹하는데 더 큰 매력을 느낀다. 여자의 마음은 변덕스러워 /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아/ 말과 생각을 늘 바꾸지/ 언제나 예쁘고 매력적인 얼굴/ 그러나 눈물을 흘리며 남자를 속이는 여자의 마음… 만토바가 부르는 ‘여자의 마음’이란 노래 내용이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가 9월 열리는 2025시즌 개막작으로 베르디의 ‘리골레토’를 공연한다. 요사히 SF 오페라에서 베르디붐을 다시 살려내고 있는 김은선 지휘자가 지휘봉을 들 예정이어서 9월 공연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다. 고음질 노래 더빙, 아름다운 영상의 1981년도판 ‘리골레토 파바로티와 함께’(Rigoletto with Pavarrotti english sub)가YouTube에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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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