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관심, 배려 그리고 사랑

2019-03-14 (목) 박찬효 약물학 박사
작게 크게
관심, 배려 그리고 사랑

박찬효 약물학 박사

개인은 전체의 일부이다. 전체는 가족, 소속 단체, 마을이나 사회 공동체, 나아가 온 인류라 말할 수 있겠다.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는 다음과 같은 독백이 나온다. “어떤 사람도 그 혼자서는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일부이니, 흙 한 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유럽 또한 그만큼 줄어들기 마련이다.(중략) 어떤 사람의 죽음도 그만큼 나를 줄어들게 한다. 나는 인류 속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이야기 하지만, 배려 없이는 사랑할 수 없고, 또한 관심이 없으면 배려할 수 없다. 따라서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관심이 없으면 미움조차 없기 때문이다.

흔히 한 사람의 성숙도는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에 비례한다고 말한다. 특히 성경의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자기의 삶을 온전히 남에게 쏟아 부은, 마치 신발의 더러움을 털고 문에 들어가는 도어 매트와 같이 지극히 자기희생적, 이타적 삶을 살았다.


그런가 하면, 나이가 들어도, 혹은 믿음이 있다는 기독교인들도 세상이 마치 자기중심으로 돌아가는 듯이 관심과 초점이 오로지 자기에게만 집중된 사람도 종종 만나게 된다. 소위 “어른 아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현 미국의 대통령 트럼프도 이 범주에 속하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종종 있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공동생활에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 그리고 사랑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건강한 사회를 이루게 하는 필수적 조건이지만, 이것들조차 자기중심적 사고와 판단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오히려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삶의 경험을 통해 깨닫는다.

로스 캠벨의 책 “How to Really Love Your Child(어떻게 자녀를 진정 사랑할 수 있나)”와 게리 채프먼의 책 “The Five Love Languages”(다섯 개의 사랑의 언어)”는 우리가 자식이나 남편, 그리고 아내를 사랑할 때 진정으로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관찰하고 이해하고 그들이 원하는 사랑을 베풀기 보다는 오히려 오직 자기의 관점에서 자기의 방법으로만 그들을 사랑한다면, 상대방에게는 전혀 그것이 사랑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쉬운 예를 들면, 부모들이 자식의 장래를 위해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교훈적 충고를 할 때 만일 그것이 자식에게는 단지 잔소리로만, 또는 부모가 원하는 것을 자식을 통해 이루려는 욕망으로만 받아들여진다면 그 사랑은 설 자리가 없어지고 오히려 그 관계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오래전 우리 부부의 결혼 25주년 기념일에 대학생이었던 큰 아들이 엄마, 아빠에게 드리는 개별적 감사의 시를 써서 예쁜 액자에 넣어 기념 선물로 주었다. 많은 감사의 글귀가 있었지만, 아마도 엄마에게 준 시 내용 가운데 “나를 이해해 주시고, 나를 한 개인으로 존중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아내의 가슴에 가장 큰 울림을 주었지 않았나 생각된다.

인생길을 걸어가면서 어떤 사람들은 주로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산다. 또 속해 있는 가정, 직장, 단체나 사회 공동체를 위하여, 더 나아가 온 인류를 가슴에 품고 자기를 부정하고 희생하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사는 사람들 등 여러 부류가 있다.

이제 인생의 황혼기를 지나면서 적어도 나의 가족에게나마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살고 있다면, 그런대로 괜찮은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별히 믿음의 선한 영향력이 자식들의 삶에 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박찬효 약물학 박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