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세먼지 누가 만들었나

2019-03-08 (금) 권정희 주필
작게 크게
중국의 극심한 대기오염 문제가 국제적 주목을 끈 것은 5~6년 전부터였다. 겨울철이면 스모그가 너무 심해서 “옆 사람의 말소리는 들리는데 얼굴이 안 보인다” “팔을 쭉 뻗으면 내 손가락이 안 보인다”는 등 설화적 체험담들이 보도되곤 했다. TV 뉴스에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잿빛의 덩어리여서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 구분이 어려운 광경이 보도되었다.

대기오염은 초고속 성장해 G2의 자리를 차지한 중국의 성장의 대가이다. 수십년 ‘세계의 공장’으로 천문학적 숫자의 공장들이 연일 시커먼 매연을 뿜어내니 광활한 중국 대륙의 하늘도 감당이 안 되는 것이다. 특히 겨울철 집집마다 석탄을 때기 시작하면 어마어마한 양의 미세먼지가 배출되면서 눈앞이 안 보이는 스모그가 형성된다.

미국 환경단체 추정에 의하면 중국에서 대기오염 관련 사망자는 연 160만 명. 그러니 “중국은 미래가 없다. 머지않아 그곳에서는 숨을 쉴 수 없을 테니까” 라는 말이 나돌 정도이다. 비슷한 현상은 역시 초고속 성장 중인 인도에서도 극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스모그를 남의 일로 여겼던 한국인들이 미세먼지 비상사태를 맞았다. 지난 한주 한국은 초미세먼지 역대 최악 최장기록을 세웠다.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이라는 악재에 이어 미세먼지 ‘재앙’이 들이닥치자 문재인 정부는 정신을 못 차리는 모습이다. 허둥지둥 내놓은 대비책이 마스크 쓰고 공기청정기 사용하라는 것이니 배고프면 밥 먹으라는 수준이다. 미세먼지 30% 절감하고, 중국과 대책 논의하겠다던 문 대통령의 2년 전 대선공약이 새삼 들춰지며 공격을 받고 있다.

마침 이번에 서울을 다녀온 한 지인은 시청 앞에서 남산이 안 보이는 뿌연 하늘과 목에 더해 가슴까지 따끔따끔하게 만드는 미세먼지에 “화가 나더라”고 했다. 이러다가는 산천초목, 동물, 사람 … 다 죽게 생겼는데 정부는 뭘 하고 있는지, 분노가 치솟더라고 했다.

높고 푸른 하늘이 자랑이던 한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고농도 미세먼지는 세 가지 요인으로 발생한다. 오염원, 바람, 정체현상이다. 오염원은 자동차 배기가스, 매연, 화력발전 등 대기오염의 근본원인. 정부가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장려하고 화력발전소나 노후 경유차 등을 규제하는 배경이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오염원을 모두 없앤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바람 때문이다. 한반도는 서풍지대에 위치해 중국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을 타고 중국의 미세먼지가 황해를 건너 한반도에 상륙한다. 월경성(Transboundary) 대기오염으로 한국뿐 아니라 유럽을 비롯, 접경의 모든 국가들은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대기오염은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 협력이 필요한 사안이다.

이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대기의 정체현상이다. 대기 중 오염물질들이 거센 바람을 타고 태평양으로 날아가 버리면 좋을 텐데 백두대간을 넘지 못하고 정체되면서 미세먼지 고농도 현상이 장기화한다. 바람이 약한 탓도 있고, 도시에 고층빌딩들이 너무 많아서 대기의 흐름을 방해하는 탓도 있다. 자연 대신 문명이 들어찬 환경, 결국 우리가 신앙처럼 믿어온 성장과 발전의 후유증이다.

“인간이 자연에게 독을 주면 언젠가는 자연이 인간에게 독을 돌려준다”는 주장을 한 사람이 있었다. 환경운동의 고전인 ‘침묵의 봄’의 저자 레이철 카슨이다. 1962년 발간된 책에서 카슨은 새들이 지저귀고 나비가 날아들며 만물이 소생해야 할 봄이 와도 죽은 듯 고요하기만 한 상상의 마을을 이야기했다. 마을이 죽은 마을이 된 것은 마법에 걸려서도, 적의 공격을 받아서도 아니었다. “주민들 스스로 그렇게 만들었다”고 카슨은 지적했다. 원인은 살충제 DDT에 대한 맹신이었다.


2차 대전 중 군인들의 몸에 뿌려 빈대와 이를 없앰으로써 전염병 발병을 억제했던 DDT는 전후 농업에 활용되었다. 뿌리기만 하면 농작물의 병충해를 잡아주니 농부들에게는 그보다 고마운 것이 없었다. 인간에게 자연을 통제할 힘을 준 셈이었다. 경비행기로 공중에서 대량 살포하곤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무지도 그런 무지가 없었다. 제한된 지식으로 겁 없이 행동한 오만이었다.

‘침묵의 봄’은 위대한 과학의 산물로 통하던 DDT가 실은 생태계를 파괴하는 위험물질이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발암물질 DDT는 1970년대 전후 대부분 국가에서 사용이 금지되었다.

“이 세상에 확실한 건 세금과 죽음뿐”이라고 벤자민 프랭클린은 말했지만 하나를 더 보태자면 ‘호흡’이다. 살아있는 한 숨을 쉬어야 하고, 매 호흡마다 들이마실 공기를 선택할 수는 없다.

60년 전 DDT를 공중에 뿌렸던 인간은 지금 화석연료를 펑펑 쓰면서 미세먼지를 공중에 살포하고 있다. 그리고 호흡이 곤란한 지역들이 생겨나고 있다. 맑은 하늘을 되찾기 위해 각자 할 일이 있고, 정부가 할 일이 있으며, 국제사회가 공조해야 할 일이 있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권정희 주필>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