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노이의 진실

2019-03-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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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하노이에서 열린 미북 정상회담만큼 한미 양국 언론의 시각 차를 보여준 사건이 또 있을까. 한국 언론은 회담이 열리기 전부터 500명에 달하는 취재진을 보내 시시각각으로 현장 중계를 했다. 이에 비해 미국 언론은 27일 주요 뉴스시간에 정상회담 뉴스는 짤막하게 다루고 오히려 트럼프의 전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의 의회증언을 더 자세히 보도했다.

결과적으로 트럼프와 김정은의 회담은 허무하게 성과없이 끝났다. 대부분의 경우 정상회담은 실무진이 합의사항을 다 만들어 놓고 정상은 카메라 세례 속에 서명만 하는 요식행위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트럼프는 실무진의 보고를 받고 뒤에서 지시하는 대신 김정은과의 친분을 내세우며 직접 만나 담판을 짓는 방식을 택했다. 그 결과가 이번 하노이의 외교 참사다. 말로는 좋은 대화를 나눴고 많은 진전이 있었으며 앞으로도 협상을 하겠다고 했지만 트럼프 재임 기간 북핵 문제 해결은 물 건너 갔다고 봐야 한다.

이번 회담이 깨진 직접적인 이유는 김정은이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는 대가로 모든 제재 해제를 요구하자 트럼프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플러스 알파’를 원했기 때문이었다고 전해진다. ‘플러스 알파’에는 영변 외에 기타 핵농축 시설과 대륙간 탄도탄(ICBM)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회담 결렬 후 트럼프가 말한 비밀 핵시설이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미국이 비밀 핵 농축 시설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다는데 놀라움을 표시했다고 말했다. 이 시설이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평안남도 남포 인근에 있는 강선 기지로 연변보다 규모가 2배 큰 우라늄 농축시설로 보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전문가들은 제3의 핵 기지일 수도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북한은 영변 말고도 여러 개의 핵 농축 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그 중 영변 하나만 포기하고 제재를 풀려다 미국이 비밀기지의 존재를 지적하자 실패로 돌아간 것으로 볼 수 있다. 2002년 제임스 켈리 특사가 북한을 방문, 몰래 고농축 우라늄을 개발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따지자 처음에는 깜짝 놀라 부인하다 나중에 실토한 사건을 연상시킨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은 판이 깨질 가능성이 뻔히 보이는데 트럼프와 김정은은 하노이에 왜 갔을까 하는 점이다. 한가지 가능성은 김정은의 오판이다. 국내에서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가 자신이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들어주고 외교적 승리로 포장하려 할 것으로 봤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다. 그렇게 할 경우 마이클 코언의 배신과 특별검사의 수사, 연방지검의 수사 등으로 곤경에 빠진 트럼프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약해질 수 있다. 북한에 대해 당당하고 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오히려 미국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어쨌거나 이번 회담으로 북한은 순순히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음이 분명히 드러났다. 정말 핵을 포기하고 개혁 개방의 길로 나서겠다면 트럼프의 요구를 거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북한 핵 포기라는 환상을 갖고 있는 이들은 하루 속히 헛꿈에서 깨어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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