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베트남 모델과 수령유일주의

2019-02-11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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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대다수가 반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1차 미-북 정상회담이 열린 게 지난해 6월이다. 그러나 이후 북한 핵 폐기에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그러니 58%의 미국인은 2차 미-북 정상회담 개최를 반대하고 있다는 보도다.

전문가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스스로 ‘협상의 달인’임을 내세웠다. 그 트럼프가 그런데 오히려 김정은의 협상전술에 말려들지 않았나 하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거기다가 미국의 정보기관 수장들은 일제히 북한의 핵 포기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래서인가. 오는 27, 28일 양일간 열릴 2차 트럼프-김정은 회담을 바라보는 전문가집단의 시선은 극히 회의적이다.


전쟁보다는 그래도 대화가 낫지 않을까 하는 정도가 그나마 긍정적이라면 긍정적 전망이다. 트럼프는 오히려 동북아지역에 핵 확산을 불러오는 장본인이 될 것이라는 극단의 비관적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정치적 곤경에 몰렸다. 외교적 승리가 절실하다. 때문에 트럼프는 비핵화가 아닌 핵동결이나 대륙간탄도탄(ICBM)일부 폐기 등에 합의하는 ‘스몰 딜(small deal)’선에서 서둘러 봉합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여전히 북한의 중거리 핵탄두에 노출돼 있는 일본과 한국(문재인 정부 이후)의 자체 핵무장은 필연적 수순이다. 이런 전망이 일각에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기대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북한이 맞닥뜨린 경제적 현실, 그리고 개최지가 베트남이란 점과 관련해 1차 회담과는 달리 성과가 있을 것이란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7월이었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하노이를 방문한 자리에서 김정은을 베트남에 초청해 경제발전상을 돌아보게 했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한 것이. 그는 또 트럼프 대통령이 평양은 베트남이 간 길을 따라 갈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무슨 메시지를 김정은에게 던지고 있나. 평화와 경제적 번영. 지속적인 1당 통치, 아니 1인 독재체제 유지도 가능하다는 것이 아닐까. ‘베트남 모델’을 도입하면이란 단서와 함께.

베트남도 한때 북한의 ‘고난의 행군’ 못지않은 경제난을 겪었다. 그때는 1975년 적화통일을 이룬 직후로 미국과의 냉전만으로도 벅찼다. 그런데다가 중국과도 적대관계였다.

베트남 공산당이 당의 생존과 무너져가는 인민경제 활성화를 위해 도입한 것이 이른바 ‘도이 머이’(Doi moi- 베트남어로 쇄신이라는 뜻)정책이다. 그해는 1986년으로 이와 함께 과감한 개혁개방정책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오랜 적국이었던 미국과도 적극적인 관계개선에 나섰다.


그 결과 오늘날 베트남은 자본주의 변방의 ‘가장 유망한(hot) 시장’으로 발돋움했다. GDP는 2,474억 달러로 세계 47위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 순위는 68위로 78위의 중국을 앞선다. 개혁개방과 함께 이 같은 경제발전을 이룩하면서도 베트남 공산당 1당 통치에는 흔들림이 없다.

2차 정상회담 개최지로 베트남을 선택한 것은 김정은이 이 같은 ‘베트남 모델’을 도입해 평화와 경제번영, 그리고 지속적인 체제유지라는 ‘세 마리 토끼’를 다 거머쥐라는 워싱턴의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것이 일부에서의 해석이다.

이 베트남 모델은 그러면 북한에도 통할까. “전혀 불가능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베트남모델 도입은 그자체가 수령유일주의 김정은 체제의 사망을 불러올 수 있는 주술이 될 수도 있다”-. 포린 폴리시지의 진단이다.

무엇이 ‘도이 머이’를 성공으로 이끌었나. 1986년 이후 베트남의 지도자 교체는 서방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지도자 교체 빈도에 뒤지지 않는다. 공산당 총비서만 다섯 차례 교체됐다, 총리는 7번 바뀌었다. 열린 집단지도체제가 베트남공산당의 전통으로 그만큼 탄력이 있는 것이다.

국부로 추앙받는 호치민(胡志明)도 권력을 독점한 적이 없다. 베트남전쟁의 분수령이 된 ‘테트 공세’도 호치민의 동의 없이 단행됐다. 1인 전횡의 ‘스트롱 맨 부재’- 이런 전통의 베트남 공산당은 원활한 개혁개방을 가능케 했고, 더 나가 민간부문의 활성화를 가져왔다.

수령유일주의의 북한은 전혀 다른 체제다. 이 체제는 지난 70년간 혁신이란 혁신은 모두 봉쇄해왔다. 그런 숨 막히는 체제가 바로 북한이다.

그 북한에 김정은이 ‘도이 머이’를 도입하면 어떤 결과가 올까. 권력분산화는 국가권한의 민간부문으로의 이양을 수반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외부정보 유입은 물론, 여행의 자유도 허용해야 한다. 이에 앞서는 것은 외국자본과 기술이 들어갈 수 있도록 법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문제는 이는 바로 3대 세습독재 체제를 흔들 수 있다는 것. 다른 말이 아니다. 정보의 자유화와 함께 그만큼 민중봉기나 쿠데타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거다. 그걸 김정은이 과연 허용할까.

여기서 새삼 던져지는 질문이 있다. 김정은 체제의 진짜 얼굴은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2009년에 공산주의란 용어를 헌법에서 삭제했으니 공산체제도 아니다. 북한이 지닌 또 다른 얼굴은 전제주의 군주국가다. 권력세습에서 볼 수 있듯이. 동시에 범죄집단, 마피아국가다. 종교적 요소도 가미됐다. 김일성을 신격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류학자 B. R. 마이어스는 그런 면에서 수령유일주의의 북한과 가장 흡사한 체제로 군국주의 일본을 지적하고 있다. 천황을 귀신으로 섬기면서 순혈 민족주의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그 북한체제는 한마디로 어떻게 정의될까. 한반도를 뒤덮고 있는 ‘최악, 최대의 적폐집단’이 아닐까. 인권개선은 말할 것도 없다. 북한의 경제발전도 막고 있고, 그 존재자체가 평화에 위협이 되고 있으니까. 그 김정은과의 대회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는지….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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