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흑인들의 흑역사

2019-02-05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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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9년 아메리카 대륙의 첫번째 영국 식민지인 버지니아 제임스타운에 한 척의 네덜란드 배가 정박한다. 이곳에 외국 배가 들어오는 것은 흔한 일이었지만 이 배에는 미국 역사를 바꿀 중요한 ‘물건’이 실려 있었다. 20명의 흑인 노예가 그들이다.

1607년 제임스타운이 세워진 이래 이곳 주민들은 아사 직전까지 가는 위기를 넘기면서 인디언들로부터 담배 재배법을 전수받아 겨우 현찰이 되는 작물 재배에 성공했지만 허리가 휠 정도의 강도가 요구되는 노동을 감당할 사람이 없었다.

백인들은 일을 하지 않으려 하고 인디언들은 잡아와도 숲속으로 도망가기 일쑤인 상황에서 싼 값에 중노동을 시킬 수 있는 흑인 노예들은 식민지가 살아남기 위한 유력한 대안으로 보였다. 피부색이 같고 같은 문화권인 백인이나 신대륙의 자연환경에 익숙한 인디언들과는 달리 고유 문화와 환경에서 분리돼 고립된 초창기 흑인들은 고통을 감내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신대륙의 영국 식민지는 흑인 노예를 처음 수입한 것도, 가장 많이 수입한 것도 아니었다.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기 50년 전부터 포르투갈인들은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잡아다 팔기 시작했고 이들이 가장 많이 팔려간 곳은 카리브해의 사탕수수 밭이었다. 16세기 중반부터 1800년대까지 신대륙으로 팔려간 노예 수는 1,000만에서 1,500만으로 추산되는데 이중 북미의 영국 식민지로 간 숫자는 40만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지를 거쳐 13개주가 연합해 미합중국을 세운 후까지 흑인 노예제는 미국에서 다른 어느 나라보다 깊게 뿌리를 내렸으며 노예들은 가혹한 대접을 받았다. 아프리카에도 노예제는 있었지만 그곳 노예들은 결혼도 할 수 있었고 자기 재산도 있었다. 반면 미국 노예에게는 아무런 권리가 없었고 주인이 원하면 언제든지 노예 가족을 나눠 팔 수 있었다.

18세기 후반 노예의 효용이 줄어들면서 자연사할 것 같았던 노예제를 더 강화시키는 결정적인 물건이 탄생한다. 1793년 엘라이 휘트니가 발명한 ‘카튼 진’이 그것이다. 너무 많은 노동과 시간이 들어 경제성이 없던 목화 섬유와 씨를 분리시키는 작업을 기계화시킨 이 장치는 남부 전역을 광대한 목화밭으로 만들었고 목화 농사에 필수적인 흑인 노예의 가치를 높였다.

이 기계는 19세기 초반 남부의 수많은 농장주들을 백만장자로 만들었고 흑인 노예는 남부 경제의 핵심 요소가 됐다. 그전까지 노예 지위 개선에 호의적이던 남부 일부 백인들도 노예제 옹호로 돌아섰다. 이들을 순순히 풀어주기에는 남부 지배계층이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건국이념으로 삼은 미국의 가장 큰 치부였던 노예제는 1861년부터 1865년까지 남북전쟁을 통해 미국이 치른 모든 전쟁 사망자를 합친 것보다 많은 사망자를 내고서야 끝났다.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과 헌법 개정으로 노예제는 폐지되고 흑인들은 투표권을 얻었으나 실질적 평등까지는 멀고도 험한 길이 남아 있었다. 남부 대다수 주들이 ‘짐 크로우’라 불리는 악법으로 흑인들의 참정권을 박탈하고 차별했기 때문이다. 100년에 걸친 긴 투쟁 끝에 1964년과 1965년 ‘연방 민권법’과 ‘연방 투표권법’이 제정되면서 비로소 법적인 평등이 보장됐다. 그러고도 아직 미국사회 곳곳에 피부색에 따른 차별과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준동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올해는 북미대륙에 흑인 노예가 수입된 지 400주년이 되는 해고 이 달은 이런 흑인들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흑인 역사의 달’이다. 흑인 노예를 해방시킨 에이브러험 링컨 생일인 2월 12일과 흑인 노예 출신으로 흑인 해방에 누구보다 앞장선 인권 운동가 프레드릭 더글러스 생일인 2월 14일이 있는 2월 두 번 째 주를 기념하기 위해 1926년 제정된 ‘흑인 역사의 주’를 확대한 ‘흑인 역사의 달’은 1969년 켄트 주립대가 제안해 1970년 시행됐으며 1976년부터는 전 미국이 이를 기념하고 있다.

자영업자가 많은 한인들이 경험하는 흑인들은 대부분 교육과 소득수준이 낮고 범죄율이 높은 커뮤니티 출신이라 아직도 한인 상당수는 흑인들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 한인들이 누리고 있는 평등권과 투표권은 이들이 오랜 시간 값비싼 희생을 치르고 얻어낸 것이다. 이들을 무시하기에 앞서 흑인들이 겪어온 오랜 고통의 역사를 되돌아 봤으면 한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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