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투자가의 수호천사’

2019-01-22 (화) 민경훈 논설위원
작게 크게
사람들은 주식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장래가 유망한 분야와 그 분야에서 뛰어난 회사를 고르고 그 회사의 실적과 전망을 분석해 내야 한다. 경기 사이클과 경제 동향, 돌발 변수까지 계산에 넣어야 한다. 전문가라 하더라도 이런 방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 올바른 결론을 내리는 것은 어렵다.

이런 이유로 주식 투자를 포기하려는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다. 전문가들이 밤새도록 연구해 고른 주식보다 원숭이들이 다트를 던져 고른 주식의 수익률이 좋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주식 선정에 증권 전문가보다 원숭이가 우월하다는 주장을 처음 체계적으로 편 사람은 프린스턴 대학 교수 버튼 말킬이다. 그는 1973년 ‘월가에서의 무작위 행보’(A Random Walk Down Wall Street)라는 책에서 “눈을 가리고 신문 주식란에 다트를 던진 원숭이가 전문가들이 세심하게 고른 것에 못지않은 수익을 내는 주식을 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그 후 여러 연구에 의해 입증됐다. 그 중 하나인 랍 아노트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1964년부터 2010년까지 상장된 1,000개 주식 가운데 무작위로 30개를 골라 100개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는데 이중 98개가 주가 평균 상승분을 웃돈 것으로 나타났다.


원숭이가 고른 주식이 평균 상승분을 능가한 것은 이 중 상당수가 소형주였기 때문이다. 이 기간 1,000개 주식은 연평균 9.7% 오른 반면 주식시장 총액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30대 기업은 8.6%밖에 오르지 않았다. 원숭이 주식의 대부분이 연 10.5%의 상승을 기록한 소형주들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어쩌다 한번 주식의 움직임을 맞출 수는 있지만 항상 맞출 수는 없다. 결국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감안하면 평균에 근접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주식 조사비용은 꾸준히 들어간다. 이 비용은 시간이 갈수록 복리로 불어가기 때문에 전문가가 고른 주식은 주식의 평균 상승을 이길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모든 규칙에는 예외가 있다. 워렌 버핏 같은 사람이 그 예다. 그는 1984년 말킬의 주장을 비판하며 주식을 골라 평균을 능가하는 수익률 올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후 그는 지난 30여년 간 자신의 말이 옳다는 것을 몸으로 입증했다.

그러나 그런 그도 유언장에서 자기 아내 재산 관리인들에게 대부분의 투자가들은 기업의 향후 수익을 예측할 능력이 없다며 투자금의 10%는 단기 정부채권에, 90%는 비용이 낮은 ‘뱅가드’ 같은 S&P 인덱스 펀드에 넣어둘 것을 지시했다.

저비용 뮤추얼 펀드의 대명사 ‘뱅가드’를 창립한 사람은 존 보글이다. 그는 전문가가 주식을 골라 수시로 사고파는 대신 모든 주식을 통째로 사 그대로 가지고 있는 인덱스 펀드를 일반에 널리 알린 사람이다. 1976년 그가 인덱스 펀드를 도입했을 당시만 해도 10%에 가까운 판매 수수료에 연 2%에 달하는 관리비를 받는 것이 펀드업계의 관행이었다. 그는 이를 “강도짓”이라고 비난하며 수수료를 없애고 관리비도 0.3%대로 대폭 인하했다.

처음 그를 비웃던 펀드업계 종사자들도 인덱스 펀드의 우월성이 입증되면서 투자가들이 뱅가드로 몰리자 하는 수 없이 판매 수수료를 없애고 관리비도 낮췄다. 펀드 매니저와 회사가 가져가던 돈을 일반 투자가에 되돌려 주는데 그만큼 기여한 인물은 없다. ‘일반 투자가의 수호천사’라는 별명이 그냥 붙은 것이 아니다.

프린스턴을 졸업하고 필라델피아에 있는 웰링턴 투자회사에서 주식 전문가로 출발해 30대에 최고경영자 자리까지 오른 그는 70년대 주가가 곤두박질치는 바람에 그 책임을 지고 해임되자 인근 밸리 포지에 ‘뱅가드’라는 뮤추얼 펀드 회사를 차린다. 밸리 포지는 영국군에 연패해 기진맥진한 미 독립군이 모진 겨울을 견뎌내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곳이고 ‘뱅가드’는 1798년 나일 해전에서 나폴레옹에 승리한 넬슨 제독이 탄 기함 이름이다.

젊어서부터 여러 차례 심장 마비를 겪다 1996년 심장이식 수술을 하고 뱅가드 회장직을 내려 놓았던 보글이 지난 주 8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자본주의의 대중화에 그만큼 기여한 인물도 없다.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주식 투자의 길을 열어 부를 안겨준 그의 명복을 빈다.

<민경훈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