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 지키기

2019-01-10 (목) 조이스 리 스탠포드대학교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리서치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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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키기

조이스 리 스탠포드대학교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리서치 매니저

2018년 한 해 한국의 독자들은 지식이나 정보보다 위로와 공감을 얻기 위해 책을 찾았다. 교보문고, yes24, 인터파크 3대 대형서점의 2018년 결산을 살펴보면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모든 순간이 너였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등 일상 속 작은 것에서 기쁨을 발견하고 위로를 얻는 방법을 설명하는 힐링 에세이가 종합 10위권 중 6권을 차지하며 선전했다. 교보문고는 2018년 베스트셀러를 대변하는 키워드로 “토닥토닥”을 선정하기도 했다.

이들 책은 성공한 멘토나 롤모델의 자서전, 간절히 바라고 노력하면 이뤄진다는 식상한 자기계발서나 삶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만을 조언하는 어설픈 심리치료서들과는 달리 “그대로의 나 자신도 괜찮다” “너무 애쓰며 살지 않아도 된다”는 소소한 위로와 공감을 전한다. 또 관계, 일상, 특히 다른 사람의 기준이 아닌 나로서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는 공통점이 있다. 타인 주도적 삶을 벗어나 내 생각대로, 자기 주도적으로 살아도 된다는 메시지이다.

세 서점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한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는 모두에게 익숙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곰돌이 푸를 통해 남들과 조금 다르지만 틀린 것은 아닌 확고한 삶의 방식을 전한다. “일단 한숨 자고 시작하자” “기분이 우울해질 것 같아도 걱정하지 마. 그냥 배가 고픈 걸지도 몰라” 와 같은 조금은 우습고 단순한 메시지에서?치열하고 각박한 삶에 지친 독자들은 따뜻한 위로를 얻었다.


베스트셀러는 그 시대의 고민을 반영하게 마련이다. 정치적으로 억압되었던 80년대에는 김홍신의 ‘인간시장’과 같은 소설이, 90년대에는 ‘동의보감’ ‘토정비결’과 같은 역사물이, 2000년대에는 ‘마시멜로 이야기’와 ‘시크릿’ 등 자기계발서와 소위 “부자 되기”를 알려주는 재테크 관련도서들이 주목을 받았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과 같은 에세이들이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대화법’ ‘미안하지만 오늘은 내 인생이 먼저에요’ 등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를 지키는 법, 그리고 사회적 ‘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을들의 정당한 권리를 지키는 방법을 알려주는 도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개인을 정의하는 집단주의 문화, 더구나 과열된 교육열과 과도한 경쟁의 한국사회에서 개개인이 스스로의 자존감과 행복을 찾고 지키기란 쉽지 않다. 경쟁사회가 가져오는 강점과 집단주의 문화에서 오는 효율성도 경시할 수는 없으나 경쟁과 효율성이 가져오는 경제적 성과가 높을지라도 개개인의 정신건강과 행복감은 낮아진다고 수많은 연구들이 말하고 있다. 자신에 맞는 행복보다는 집단의 가치에 따라 인정받고 성공하는 것이 곧 행복이라고 느끼기에 그 기준에서 멀어질수록 허탈감, 좌절감, 열등감, 외로움은 가중된다.

사회적 기준에 맞는 성공과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 또한 언제 추월당할지 몰라 불안하고 계속 나아가야한다는 강박과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갑에게도 을에게도 힐링이 필요한 시대이다.

복잡한 관계 속에서 나 자신을 잃어간다고 느껴 삶의 방식을 ‘나’로 옮기려는 독자들의 움직임과 함께 점차 확산되고 있는 혼밥, 혼술,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노멀크러시 (평범한 삶에 대한 지향) 열풍 또한 과도 경쟁사회, 권위적 문화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벗어나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내 기준에 맞게 살고 싶어 하는 이들의 외침이다. 집단주의, 가족주의 사회를 지나 합리적 개인주의를 꿈꾸는 현 한국사회의 모습이다.

가족과 사회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며 무엇이 행복인지도 잊고 살아온 기성세대에게는 이러한 변화가 불편하고 언짢을 수도 있다. 그러나 행복의 의미를 주도적으로 찾아 나서겠다는 노력은 고성장을 이룬 현 대한민국에 맞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자 사회 전체를 위해서도 긍정적인 변화일 것이다.

‘나 우선주의’가 과도한 개인주의적 사회로 이어져서는 안되겠지만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기준보다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조금 더 귀 기울이고 싶은 갈망은 개개인의 건강하고 정당한 권리가 아닐까 싶다.

책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내 마음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각자 처한 상황에서 위안과 용기를 얻는 새해가 되길 소망하며, 따뜻한 위로의 힐링 에세이를 추천하고 싶다.

<조이스 리 스탠포드대학교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리서치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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