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터지는 곡소리

2019-01-08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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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시작된 지 1주일밖에 안됐지만 대한민국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파열음으로 시끄럽다.

청와대 특별 감찰반원으로 있다 여권 인사들에 대한 비리 사실을 보고했다 쫓겨났다고 주장한 김태우에 대해 청와대가 “궁지에 몰린 미꾸라지 한마리가 개울물을 온통 흐리고 있다”며 명예 훼손의 법적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에는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었던 신재민이 청와대가 KT&G와 서울신문 사장 인사에 개입하고 적자 국채 발행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을 제기해 정국을 흔들고 있다.

정부는 그를 기밀 누설죄로 고발하고 더불어 민주당 손혜원 의원은 “나쁜 머리…가증스럽다…사기꾼…도박꾼…양아치”라며 막말을 늘어놓았다.


정부의 고발 조치와 손혜원의 막말은 친정부 단체인 참여연대와 여당 내에서도 비판 받고 있다. 80%대로 시작해 반 토막 난 문재인 지지율에 대한 초조감과 경제난 속에 집권 3년차를 맞는 불안이 엿보인다. 궁지에 몰린 것은 김태우가 아니라 청와대와 여당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보다 정부와 여당을 코너로 모는 것은 노동계의 반발이다. 노동계는 7일 정부가 밝힌 최저임금 결정 체계 변경안에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정부가 새로 내놓은 개편안은 사용자와 노동자 대표가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기존방식 대신 전문가들로 구성된 ‘구간 설정 위원회’가 최저임금 인상 구간을 먼저 정하고 이것이 노사와 공익위원이 참여하는 ‘결정 위원회’에 넘겨져 그 범위 안에서 최저임금을 정하도록 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익이 정면으로 대립하는 노사가 이를 정하는 바람에 갈등이 증폭됐다고 보고 전문가를 참여시켜 이해관계의 조정을 꾀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한국노총은 정부가 사업자의 지불능력을 고려하여 임금을 고려하겠다는 것은 최저임금법 위반이라고 반발하고 있고 민주노총은 “재벌 대기업 등 재계 압력에 굴복해 최저임금 인상 정책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라고 주장했다. 노조 측은 이런 중요한 제도 변경을 당사자와 아무런 상의 없이 밀어붙인다면 전체 노동자의 대투쟁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총파업을 경고했다.

정부가 노동계의 반발을 예상하고도 이런 개혁안을 들고 나온 것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최저임금이 크게 오르면서 자영업자들 중 상당수가 생사의 기로에 서있기 때문이다.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최저임금이 33%나 오르자 업주들은 무인판매대를 설치하거나 주휴수당을 피하기 위해 15시간마다 알바생을 교체하는 편법을 쓰고 있다. 한 사람에게 1주 15시간 이상 일을 시키면 주휴수당을 따로 줘야 하는데 이를 감당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아예 점원을 가족들로 교체한 업주들도 있다. 이처럼 알바 일자리가 줄어들자 취업 공고만 내면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서울시가 한달 일할 알바생 453명을 모집하자 1만6,000명이 몰렸다. 예년의 2배에 달하는 숫자다.

업주나 알바생 모두 사정이 어려워지자 물고 뜯는 소송전이 급증하고 있다. 알바생들은 사실상 사문화됐던 노동법 규정까지 세세히 따져 돈을 달라며 고소 고발을 일삼고 업주들은 쉴 틈을 주지 않고 알바생을 부리며 노동시간을 따지고 있다.


급증하는 노사 갈등과 인건비 상승 속에 자영업 경기지수는 얼어붙고 있다. 한국은행이 작성한 지난 12월 자영업 경기지수(CSI)는 59로 1월보다 25포인트 빠졌다. 이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08년 이후 가장 큰 하락이다.

올 초 최저임금이 작년보다 11% 가까이 오르면서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는 500만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데 역대 최대 규모다. 특히 저임금 노동자가 많은 숙박 음식업소(64%)와 도소매업 종사자(36%)가 많이 해당된다.

이렇게 된 것은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1만원’을 선거 공약으로 내걸면서 급속한 임금인상을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OECD 국가 평균보다 영세 자영업자가 4배나 많은 현실 속에서 노동자 임금을 대폭 올리자 업주들이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직원 수를 줄이는 바람에 저소득층 소득은 오히려 줄어들고 부의 불평등은 심화됐다.

한국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자영업 대란은 급속한 임금인상이 고용과 관계가 있느냐는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것이 반면교사가 돼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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