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19년의 사자성어는…

2019-01-07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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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 가운데 맞이한다. 그러나 남는 것은 아쉬움뿐이다. 한 해가 간다. 그리고 새해가 시작된다. 그 때마다의 소회다.

2001년부터였나. 한국의 교수신문이 한 해의 끝자락에 그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를 발표해 온 것이. 선정된 사자성어들은 거의 다가 부정적이었다. 압권은 2015년의 혼용무도(昏庸無道-어리석고 무능한 군주의 실정으로 나라가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였다.

2018년의 사자성어로는 임중도원(任重道遠,-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이 선정됐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응원과 질책이 담긴 선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회적 공감을 빚어내기엔 어딘가 역부족이 아닐까.


막중한 책무를 수행하려면 귀를 넓게 열어야 한다. 지난 1년이 그런데 과연 그렇게 흘러갔나. 오만과 불통 속에 북한을 향한 좌향좌 일방의 폭주를 해왔다. 그러니….

또 어김없이 맞이한 새해다. 멀리서 바라보이는 대한민국의 새해. 2019년은 김정은과 함께 시작된 느낌이다. 패션부터 달라졌다. 말쑥한 정장에 넥타이 차림. 아주 비싼 가죽소파에 앉아 신년사를 발표했다.

그 김정은의 모습을 대한민국 방송사들도 생중계했다. 과도할 정도의 관심표명이라고 할까. 하여튼 브라운관을 통해 전해진 시각정보는 압도적이었다. 거드름을 피우며 미국에 대해, 대한민국에 대해 한 마디하고 나선 ‘소년’독재자의 모습은 한 주가 지난 시점에도 여전히 뇌리에 남아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의인들과 남산에 해맞이를 하러 갔다고 했던가. 그 문재인 대통령이 무슨 신년사를 발표했는지는 벌써 잊혀졌다.

“비핵화에는 아무 양보가 없다.” “북한 체제가 가장 원하는 것, 한미동맹 해체의 노림수만 던졌다.” “사실상의 핵보유국임을 천명했다.” “우리 민족 끼리를 강조함으로써 한미동맹의 이간을 꾀했다.” 김정은의 신년사에 대한 미국 언론들의 반응이다.

정작 미 언론들의 관심을 끈 건 미국 대통령 집무실을 모방한 김정은의 신년사 발표 무대장치다. 이를 통해 은연 중 트럼프와 동격의 국제지도자 이미지를 심느라고 애썼다. 동시에 문재인 대통령은 한 수 격이 떨어지는 지도자로 일부러 그 이미지를 격하시켰다는 것이 데일리 비스트지의 지적이다.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로 일부러 뒷면을 장식한 것도 그렇다. 이른바 ‘백두혈통’이 북한, 더 나가 한반도 전체의 지도자란 점을 은연 중 부각시켰다는 것.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의 입장은 이미 예상됐던 것이란 게 미 언론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그 보다는 대한민국을 향해 던진 메시지에 더 주목을 했다.

대한민국의 지존인 시민을 수령유일주의 체제의 신민으로 보는 듯 했다. 그러면서 미국과의 동맹옹호 주창자들을 반 민족, 반 애국 세력으로 몰아붙였다. 동시에 강조한 것은 외세 배격에, ‘우리 민족끼리의 평화체제 구축’이다.

얼핏 듣기에 귀가 솔깃한 단어들만 골라 썼다. ‘민족의 자주성’이란 말이 그렇다. ‘평화’라는 말도 그렇다. 핵이 본 관심사다. 그런데 비핵화는 온데간데없다. 핵정치가 현란한 평화담론의 성찬으로 뒤바뀌고 만 형국이다.

핵무장 수령유일주의 체제의 위협이란 엄중한 현실을 호도하면서 ‘평화 프레임’으로 얽어 놓으려는 것이다.

다른 말로하면 ‘레드 매트릭스(Red Matrix)’ 트랩을 씌우고 있다고 할까. 그러니까 잔인한 북한 세습 공산왕조에 대한 진실은 왜곡시킨다. 그러면서 친북 성향의 정보환경을 조성하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한미동맹을 무너뜨리려 들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해인 2020년을 바로 앞 둔 2019년은 그 좌향좌 편향의 프레임 전쟁이 한층 치열해지는 시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적지 않은 미 주류언론의 우려다. 이미 문재인 정부는 거침없는 친북원미(親北遠美), 아니 친북반미 노선으로 방향을 정했다.

한국의 보수보다는 김정은의 북한이 더 미덥다. 미국보다는 중국이 더 친근하고 신뢰가 간다. 문재인 대통령의 생각이고 좌파의 입장이다. 그들의 시각으로 볼 때 현재 한국이 맞이한 ‘경제 위기론은 보수정당과 보수언론, 대기업의 이념 동맹 결과물’일 뿐이다.

관련해 새삼 떠올려지는 것은 베네수엘라의 한 지식인의 한탄이다. ‘솥 안의 개구리(The Frog In the Kettle)증후군’은 바로 좌파 실험이 대 파국으로 끝난 베네수엘라의 오늘날 비극적 상황을 너무나 정확히 알리고 있다는 것.

설마, 설마 하면서 변화를 외면한 채 지냈다. 그러다 보니 한때 라틴 아메리카의 최우등생이었던 산유국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악의 빈곤국가에, 전체주의 체제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생각도 못했던 일이 발생한다. 그것도 아주 자주. 비정상이 새로운 정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무관심이다. 광화문 한 복판에서 김정은 찬양이 그것이다. ‘다양성’이란 이름아래 희대의 독재자 찬양이 한국에서는 이제 일상사가 되고 있는 것이다. 물의 온도가 조금씩 오르니까 감지조차 못하는 개구리처럼.

여기서 문득 드는 생각은 2019년의 사자성어는 어떤 것이 될까하는 것이다. 부중지어(釜中之魚), 아니 부중지와(釜中之蛙- 솥 안의 개구리)가 되는 것은 혹시 아닐 런지….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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