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에 올라 휴식을 즐기는 등산인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이라는 한국인들의 일반적인 인식이 있는데, 이 말을 패러디하여 ‘가깝고도 먼 산’이라고 한다면, 나는 이에 대한 댓구를 ‘Monrovia Peak’이라 말하고 싶다.
남가주의 우리 한인 등산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산의 하나가 LA의 한인타운에서 대략 55마일의 거리가 되는 Mt. Baldy( 10064’; Mt. San Antonio)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가까운 곳에 있는 산 가운데서 가장 많이 찾는 산이라면 Mt. Wilson( 5710’ )을 꼽을 수 있겠는데, 이 산의 주된 등산시작점인 Chantry Flats 까지는 LA한인타운에서 약 25마일이 된다. 그런데 이 Mt. Wilson의 바로 동남쪽에 이웃하고 있는 Monrovia Peak( 5409’ )은 운전거리로는 24마일이 채 안되는 가까운 거리에 등산시작점이 있는데도, 소풍이나 산책으로 Monrovia Canyon Falls를 찾는 이는 많지만, 주봉인 Monrovia Peak을 오르는 한인들은 거의 없는 듯 하기에, ‘가깝고도 먼 산, 몬로비아픽’이라고 표현해 보는 것이다.
등산동호인들이 이 산을 특히 잘 찾지 않는 이유를 분명히 알기는 어렵지만, 이 산을 오르는 산행이 남가주에서 10대 난코스로 꼽힌다는 얘기가 있는 것을 감안하면, 아마도 오르기가 힘들어서 그런가보다고 추측해 볼 수는 있겠다.
바로 이웃인 Mt. Wilson의 등산이, Mt. Wilson Trail일 경우 왕복 15마일에 4800’ Gain이 되고, Chantry Flats의 Upper Winter Creek Trail일 때는 왕복 12마일에 3300’ Gain이 된다. 또 Mt. Baldy의 경우 Manker Flats에서의 Ski Hut Trail일 경우에는 왕복 9마일에 3900’ Gain이 되는데 비해, 이 Monrovia Peak의 산행은 최단코스가 왕복 12마일에 5300’( 4800’+ 500’ ) Gain이 되므로, ‘낮고도 높은 산’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렇다 하더라도 이 산의 등산을 그렇게 어렵게만 생각할 이유는 없을 듯 하다. 다소 힘드는 산행임은 분명하지만 특별히 위태로운 구간이 없고 시종 원근의 경치가 뛰어 나므로, 등산이 어느 정도 익숙한 분이라면, ‘우리 동네 산’이라고 할 수 있을 가까운 이 산에 반드시 올라보시길 권한다.
그리하면, ‘가깝고도 먼 산’이 아닌 ‘가깝고도 멋진 산’이 되어질 것인데, 주관적 소감으론 Mt. Baldy를 Bear Canyon Trail로 오르는 것 보다는 조금 더 힘들고, Iron Mountain 등산보다는 다소 쉬운 코스가 아닌가 싶다.
Monrovia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1886년에 이 지역 60에이커의 땅에 철도부설의 책임을 맡았던 철도건설기술자 William N. Monroe (1841~1935 )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이 산을 등정하자면 Clamshell Peak( 4360’)과 Rankin Peak(5290’ )이라는 2개의 산을 경유하게 되는데, 보통은 왕복 9시간 내외가 걸린다.
가는 길일반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코스 중에서, 가장 짧은 왕복 12마일 거리의 산행코스를 안내한다. I-210에서 Pasadena 와 Azusa 사이에 있는 Monrovia의 Myrtle Ave에서 나와, 북쪽으로 1.6마일을 가면 Hillcrest Blvd 가 나온다. 여기서 우회전하여 0.2마일을 가면 Canyon Blvd가 된다. 좌회전한다. 0.4마일을 가 Ridgeside Dr에서 좌회전한다. 0.4마일을 나아가면 ‘865 Ridgeside Dr’에서 왼쪽으로 있는 길이 Lower Clamshell Truck Trail이다. 이 부근의 주택가에 주차한다. Monrovia Canyon Park으로 들어가서 산행을 하는 것이 아님을 유념해야 한다.
Monrovia Peak 정상에서 보는 Mt. Wilson & Mt. Harvard.
등산코스Lower Clamshell Truck Trail을 따라 100m쯤을 가면 차량통제 게이트가 있다. 이 곳을 지나 비포장으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Truck Trail을 따라 약 1마일을 가면, 북동쪽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나온다. 이 길은 처음에는 북동방향으로 산줄기를 타고 올라가는데, 대략 반마일을 지나면 북쪽으로 방향이 꺾이어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여러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게 되는데, 어느 구간은 때로 상당한 급경사로 오르기도 하지만 위태로운 구간은 전혀 없다.
고도가 높아감에 따라 차츰 전망이 확장된다. 남쪽으로는 지금 올라온 산줄기 아래로 도시전경이 펼쳐지고, 서쪽으로는 Mt. Wilson과 Mt. Harvard가 우뚝하다. 동쪽으론 도시를 향해 흘러 내리며 잦아드는 산줄기들의 끝자락이 보인다. 북으론 저만큼의 멀지 않은 거리에서 동서로 이어지고 있는 Monrovia, Rankin, Clamshell 등의 산줄기가 병풍인양 둘러있다.
고도가 높지 않은 산이라선지, 키 큰 수목은 별로 없고, 대개 덤불류의 초목들이 우거져 있을 뿐이라 시야를 가리는 것이 거의 없다. 등산로가 모두 산줄기의 능선에서 능선으로 이어져 나가기에, 원근의 전망은 시종 탁 트인 채 아름답다.
처음으로 오르게 되는 봉우리가 Clamshell Peak인데, 최정상 부위에는 서로 100m정도의 거리를 두고 남북으로 2개의 돌출부가 있다. 북쪽이 정상점이다. 여기까지 약 3시간 반쯤이 걸린다. 정상등록부가 있다. 이곳에 과거에 올랐던 사람들이 남긴 기록을 살펴보면, 이곳을 찾는 이가 결코 많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다시 정상에서 동쪽으로 내려가는 등산로를 따라 80m쯤을 내려가면, 해발고도가 4100’ 가 되는 Upper Clamshell Truck Trail에 내려서게 된다. 꽤 운치가 있는 이 비포장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1.25마일을 산책을 하는 기분으로 걷다보면, 오른쪽으로 Rankin Peak으로 곧장 오르는 산줄기가 시작되는 지점에 닿는다.
이 줄기를 타고 다소 가파른 경사를 올라가면, 부드러운 흙으로 이루어진 봉우리에 올라서게 된다. Rankin Peak( 5290’ )이다.
여기까지 5.7마일 내외가 되고, 보통 5시간 가까이 걸린다. 이제 힘든 구간은 다 지나온 것이다. 이 산 이름의 주인공인 Rankin목사를 기리는 기념비가 크게 훼손된 상태로 있다.
장로교회의 목사였던 John Rankin(1793 ~1886)은, 흑인해방운동과 도망친 노예를 도와주는 ‘Underground Railroad’에도 헌신했던, ‘반노예제도의 아버지’라고 평가되는 분으로, 남북전쟁이 끝났을 때, 유명한 노예제 폐지론자였던 Henry Ward Beecher는 ‘노예제도를 철폐한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John Rankin목사와 그 아들들’이라고 답했었다고 한다.
우리들 대부분이 잘 알고있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라는 소설의 탄생도 이 분과 관련이 있는데, 이 분이 아들이 재학하고 있던 신학교의 Calvin Stowe 교수의 집을 방문하였을 때, 자기가 사는 Ohio의 집 - 이 분은 도망친 노예들이 깜깜한 밤에도 위치를 쉽게 알 수 있도록 강 언덕위에 지은 자기 집 앞에 불을 밝혀 그들의 피난처가 되도록 했다 - 으로, 강 건너 Tennessee주에서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얼어붙은 Ohio강을 맨몸으로 건너 도망쳐 온 흑인여인의 얘기를 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이를 경청한 그 교수의 부인(Harriet Beecher Stowe)이 이에 감동하여 ‘Uncle Tom’s Cabin’ 을 쓰게 된 것이라고 한다.
John Rankin은 노예제를 지지하는 Tennessee주에서 태어나 목사가 되는데, 노예제를 반대하는 글을 쓰고 설교를 하는 것을 완고한 교회의 장로들이 금지시키자, 노예의 자유를 지지하는 Ohio주로 옮겨가서 살며, 그의 목숨에 3000달러라는 현상금이 걸리는 등 신변의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노예제도를 철폐하려는 활동을 열성적으로 전개하였다.
모든 주를 적용대상으로 1850년에 통과된 ‘도망노예법’이, 노예들의 생명을 더욱 위태롭게 하고 또 그들을 도와주는 것도 불법으로 규정하자, “이 법에 불복종하는 것이야말로, 신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라는 폭탄선언도 한다.
이 분과 Rankin Peak이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이 분의 공적을 기리고자 하는 남가주의 후인들이 그의 이름을 이 산에 헌정한 것으로 추측해 본다.
오늘날 우리들이 세계최고의 부국인 이곳에 와서 이렇게 평등한 자유를 누리고 있고 자유롭게 등산도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는 데에는, 이러한 분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해진 일이라고 하겠다. 파손된 기념비를 복원하는 노력을 우리 한인들 산악회나 단체에서 솔선하여 추진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정상등록부도 함께 마련하면 금상첨화겠다.
이제 이곳에서 Monrovia Peak을 가는 길은 그리 멀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다. 그곳에 이르는 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중간에 있는 봉우리를 하나 지나고 나면, 30m가 될지 말지한 낮은 토산 봉우리 밑에 서게 된다. 덤불류의 초목들에 덮여 있는 부드러운 봉우리인데, 이발기계로 앞머리 중앙을 밀어낸 양 반듯하게 벗겨낸 Fire Breaker를 따라 올라가면, 이제 마침내 Monrovia Peak의 정상에 다다른 것이다.
약간 펑퍼짐한 맨 흙의 정상부위에 여인의 젖꼭지인양 봉긋 솟은 곳에 “MONROVIA MT”이라고 새겨진 Benchmark가 있고, 정상등록부도 있다. 동서남북, 전망이 시원하다. Mt. Wilson, Mt. Harvard는 바로 지척으로 서로 이웃사촌임을 알겠고, Twin Peaks, Mt. Baden Powell, Mt. Baldy 등도 그다지 멀지 않은 이웃들임을 알겠다. 정상에 오르는 일이 다소 더 힘들었던 만큼, 이곳 정상에서 사방을 조망하며 누리는 성취감이나 환희심도 이에 비례하여 더욱 크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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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