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블루 존’ 이야기

2018-12-11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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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인간은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어한다.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진시황은 아방궁을 짓고 영원히 살기 위해 어의들에게는 불로환을 지으라 하고 서복에게는 불로초를 구해오라고 시켰다.

서복은 배 60척에 5,000명을 싣고 곳곳을 누비다 제주도까지 왔으나 불로초를 구하지 못하자 종적을 감췄다는 기록이 있다. 제주도 서귀포는 ‘서복이 여기까지 왔다 서쪽으로 돌아갔다’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진시황의 어의들은 어떤 상태에서도 원래 성질을 잃지 않는 수은이 좋은 것인 줄 알고 환약으로 빚어 바쳤고 이를 복용하던 진시황은 50세를 일기로 수은 중독으로 사망하고 만다.


무병장수에 대한 인간의 소망에도 불구, 이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은 최근이다. 인구 동향을 연구하던 자니 페스와 미셸 풀랑은 이탈리아의 섬 사르데니아에 있는 누오로 마을에 100세 넘은 남성이 인구 비율로 따져 가장 많이 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연구를 토대로 댄 버트너는 2005년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장수의 비밀’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그는 세계에서 인간이 병 없이 오래 사는 지역 5곳을 선정해 이들을 ‘블루 존’이라고 부르고 그 공통점을 소개했다. 사르데니아와 일본 오키나와, 코스타리카 니코야, 그리스 이카리아, 남가주 로마 린다가 그들이다. 페스와 풀랑이 사르데니아 일대를 연구하며 장수자가 많은 지역을 파랗게 표시해 ‘블루 존’이란 이름이 붙었다.

사르데니아의 세울로라는 마을에는 1996년부터 2016년까지 100세 넘은 사람 20명이 살았는데 이는 세계 기록이다. 이카리아는 주민 3명 중 1명이 90까지 살아 세계에서 90대가 가장 많은 지역이 됐다. 이곳 주민들은 오래 살뿐 아니라 건강하다. 같은 90이라도 온갖 약을 먹어 가며 링거와 휠체어에 의지해 겨우 숨만 쉬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와 마찬가지로 농사일을 하며 산다. 치매도 없고 심장 질환 발병률은 평균보다 50%가 낮다.

이들의 공통점은 로마 린다를 제외하고는 모두 섬이거나 바닷가 근처라는 점이다. 사르데니아와 오키나와, 이카리아는 섬이고 니코야는 반도다. 직접 농사를 지어 먹는 사람이 많고 가족 의식이 강하다. 식단은 야채를 주로 하고 생선과 해조류를 많이 먹으며 올리브기름, 적포도주, 콩과류, 통곡류, 강황, 견과류 등을 자주 섭취한다.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공해와 스트레스가 별로 없는 것도 특징이다.

이들 지역 중 유일하게 바닷가에서 떨어져 있는 로마 린다는 제7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 교인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곳이다. 이들은 채식주의자로 술 담배를 하지 않으며 공동체 의식이 강하고 신앙심이 깊다. 이 교회 교인들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 사는 집단이다.

이런 자료는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생활습관과 직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야채류와 해산물, 견과류와 콩 등은 모두 미국인 사망원인 1, 2위인 심장병과 암은 물론 고혈압과 당뇨 예방에 도움을 준다. 그리고 매일 자연스럽게 언덕을 오르내리며 걸어 다니고 손발을 움직여 농사일을 하는 것은 뼈와 근육을 튼튼하게 해준다.

거기다 주위에 늘 맑은 공기와 물이 있고 파도 소리가 들리는 곳에 살며 이웃과 어울려 웃고 즐기며 함께 밥을 먹는 것은 정신을 건강하게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파도 소리만 들어도 쌓인 스트레스가 상당 부분 해소된다고 한다.


건강을 좌우하는 것으로 유전적 요인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블루 존’에 관한 연구 결과는 이보다 생활습관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전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이들만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았을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 한국 TV에서는 미국에서 오래 살다 말기 암 판정을 받고 한국에 가 죽겠다며 남해 작은 섬에 들어가 야채와 해산물 위주의 식사를 하며 아침저녁으로 산을 오르내리다 암을 완치한 한 부부 이야기가 소개되기도 했다.

직장에 다니며 생활하는 모든 사람이 바닷가에 가 살 수는 없지만 이들과 같은 식단을 짜고 규칙적인 운동을 함으로써 비슷한 생활습관을 가질 수는 있다. 어떻게 해야 병 없이 오래 사는가에 관한 답은 나왔고 그 길을 가느냐 마느냐는 본인의 선택에 달렸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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