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추수감사절과 가족

2018-11-20 (화) 민병임/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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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은 책 중 두 권에 모두 일본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2015년)에 대한 묘사가 있었다. 15년 전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간 아버지, 어머니마저 세 딸을 버리고 재혼하여 다른 지역에 산다. 바닷가 마을 가마쿠라의 남겨진 집에서 세 자매는 성장하고 직장을 갖고 연애도 하며 사이좋게 산다.

아버지의 부음 소식에 사치, 요시노, 치카 세 자매는 야마가타의 장례식장으로 간다. 이곳에서 아버지의 세 번째 부인인 의붓어머니와 사는 배다른 동생을 처음 보게 된다. “우리 같이 살지 않을래?” 큰언니의 제의에 막내 스즈는 스스럼없이 “살래요” 한다. 한 달 뒤 짐 가방을 든 15세 소녀가 바닷가 마을로 온다

조숙하고 생각이 깊은 아이는 아버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가 세 언니들에게 상처가 될까봐서다. 세 자매는 아버지와 어려서 함께 먹던 멸치덮밥을 막내에게 해준다. 스즈는 평소 아버지가 만들어주던 음식이지만 처음 먹어본 듯 맛있다고 말한다. 아버지의 사랑이 그리운 세 자매는 각자 나름대로 아버지 이야기를 막내로부터 듣는다.


할머니의 추도식이 끝나자 네 자매는 바닷가로 간다. “아버지가 원망스러운 구석만 있는 것이 아니네, 자상한 면도 있었네.” 세 자매는 바닷가를 거닐며 말한다. “저 아이를 우리에게 보내주었잖아.” 세 자매는 마주 보고 웃는다. 영문 모르는 막내도 따라 웃는다. 모든 일들을 순리대로, 조용히 받아들이는 자매들, 착하기 이를 데 없다. 큰소리치지 않으면서 잔잔하게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 주는 영화다.

지난 5월에 출간된 책으로 작가 김영탁의 ‘곰탕’이라는 장편소설이 있다. 카카오페이지에 50만 독자가 열광한 SF 소설이다. 2063년 부산 아랫동네 식당 종업원인 이우환은 ‘옛날에 곰탕이라는 것이 있었어. 너 가서 조리법 좀 배워 와라’는 식당 주인의 말에 2019년 부산 곰탕집으로 시간여행을 한다.

고아원 출신 우환은 부모의 정을 모르고 자란 외롭고 쓸쓸한 신세다. 그러나 과거로 온 그는 자신의 부모가 될 고교 일진 이순희와 유강희를 만난다. 작품 전체에 구멍 뚫린 시체, 레이저총, 피부이식, 장기밀매, 순간이동 등 피비린내와 스릴이 넘쳐난다.

이우환은 곰탕 제조법을 다 배운 후 미래로 돌아가려 한다. 그러나 미래로 가는 배에서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오면서 동행자 열두 명이 사망하자 미래에서 온 살인자로부터 쫓긴다. 가족을 만난 뒤 행복해지고 싶어 과거에 있기로 한 이우환은 얼굴피부 이식 수술을 한 후 새로운 신분으로 곰탕집에서 곰탕을 끓인다.

작가 김영탁은 “2011년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2년 후 아버지가 생전에 좋아하던 곰탕을 먹다가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면 곰탕을 들고 살아계셨을 때로 돌아가 이 곰탕 드시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 소설을 썼다”고 작가의 말에서 밝힌다.

이번 주는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추수감사절이다. 평소 사이가 좋든, 무덤덤하든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먹고 마시고 떠들며 지난 일 년을 감사하는 자리이다. 각자의 삶을 살다보니 다들 바쁘다. 가족이란 삶의 근본이고 안식처이고 내 삶의 이유라고들 한다.

그러나 가족이라고 해서 다 사이가 좋지는 않다. 불같이 서로 싸우다가도, 돌아서면 다시 안볼 것처럼 화를 내다가도, 우연히 어려서 먹던 음식 한 가지에 스르르 화해를 하기도 한다. 칼로 물을 가른 듯, 다시 부모 형제간의 정이 살아나는 것이 가족이다.

이번 추수감사절 식탁에는 터키, 크렌베리 소스, 옥수수, 호박파이 외에 한 집에 살던 시절, 함께 먹던 추억의 음식 한 가지를 올려보자. 수제비, 배추전, 어묵탕, 추어탕, 감자탕, 주먹밥 등등. 나는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보고 담백한 멸치덮밥을 해보고 싶었고 소설 ‘곰탕’을 읽고서 지난 주말 곰탕을 끊여 냉동실에 얼려두었다. 가족이란 식구(食口), 즉 같은 집에서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이 아니던가.

<민병임/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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