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평화에의 미몽 사라지고…’

2018-11-19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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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 밤의 꿈은 사라지고…’-. 길기만 하던 여름 햇살을 뒤로하고 겨울로 향하고 있는 계절. 11월 하고도 중순으로 넘어가는 타이밍에 잇달아 나온 북한관련 뉴스를 대하면서 불현듯 떠올려진 상념이다.

그 첫 번째는 북한이 폐쇄를 약속한 동창리 미사일발사장 외에도 최소 13곳 이상의 미사일기지를 운용 중이라는 국제전략연구소(CSIS) 보고서를 인용, 북한이 거대한 기만극을 벌이고 있다는 뉴욕타임스 보도다. 두 번째는 4일 후 평양발 보도로, 김정은의 현지지도와 함께 이른바 ‘첨단전술무기’ 시험이 성공했다고 북한선전매체들이 대대적 선전에 나선 것이다.

그 시작은 김정은의 올해 신년사부터로 봐야 될 것 같다. 평창올림픽 참가의사를 밝히는 등 대화 공세를 펼치면서 특히 ‘민족자주와 우리민족끼리’를 강조했다. 그리고 바로 이루어진 것이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이고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이다. 이후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서 9월의 3차 남북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한반도는 평화 무드에 함빡 젖어 있었다.


한마디로 ‘페이크 뉴스’다. 그 평화에의 메시지는. CSIS 보고서의 메인 포인트다.

북한은 60년대 이후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제조와 관련해 속임수에, 은폐에, 기만전술로 일관해왔다. 김정은은 선대로부터 그 기만전술을 충실히 학습, 겉으로는 대화를 해나가면서 뒤로는 미사일기지를 확장해가며 운용해왔다는 것이다.

다른 말이 아니다. 문정인 대통령특보로도 모자라 문재인 대통령이 유럽순방에서, 또 러시아의 푸틴에게도 그런 김정은의 비핵화 진정성을 믿어달라고 호소했다. 그 김정은의 진정성이라는 것이 그런데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도, 워싱턴포스트도, CNN도 바로 이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을 ‘연인’으로까지 추켜올린 트럼프의 북한 비핵화정책은 백일몽일 수도 있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당초부터 판단에 오류가 있었다.” 뉴욕타임스의 지적이다. 트럼프는 강력한 제재와 군사적 위협에 굴복해 김정은이 핵무기 포기의사를 밝힌 것으로 판단했다. 김정은은 반대로 북한의 핵전력이 미본토를 가격할 수준에 이르자 미국이 대화에 나선 것으로 보았다는 것.

그렇게 시작된 것이 싱가포르 정상회담으로 뒤늦게 북한은 판단착오를 인식, 고의로 회담을 무산시키는 등 지연전술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CSIS 보고서로 트럼프는 벌거벗은 임금님 꼴이 됐다.” 고든 챙의 말이다. “북한 미사일 위협은 끝났다.” 싱가포르 회담 직후 트럼프가 한 선언이다. 그러나 비핵화 회담은 한 발자국도 진전된 게 없다. 그러니 그 선언은 자화자찬일 뿐, 참담한 실패라는 지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제기되고 있는 것이 문재인 정부 책임론이다. “올해 들어 내내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가 새 시대를 맞았다는 선전을 대대적으로 해왔다. 그 가운데 한국의 언론들은 저마다 획기적인 남북관계 변화 변론에 여념이 없다.” 내셔널 인터레스트의 보도다.

뉴욕타임스가 북한이 거대한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는 보도에 대해 문재인 청와대가 즉각적인 반응을 한 것도 그렇다. 이중성이 엿보인다는 거다. 틈만 나면 북한은 달라졌고 김정은의 진정성을 믿어달라고 옹호해왔다. 그 문재인 정부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북한의 미사일기지를 오히려 합리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 핵무기를 전혀 위협으로 간주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한국과 미국의 정보당국자들에게 CSIS 보고서 내용은 새로울 게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앞으로 북한과의 협상과 한반도 안정에 중요한 정치적 영향을 끼칠 것이다.” 애틀랜틱 카운슬의 전망이다.

민주당의 연방하원 장악과 함께 미 의회의 권력지형이 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CSIS 보고서는 트럼프의 북한정책 전반에 대한 의회의 보다 엄중한 검증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친북한 방향으로 일방폭주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워싱턴 조야의 비판 여론이 비등, 트럼프 행정부에게 제동을 걸라는 압력이 가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정황에서 트럼프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도 한반도 사태를 결정짓는 큰 변수로 지적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하원을 민주당에 내줌에 따라 이민법 등 트럼프의 국내정책 어젠다는 동면상태를 맞게 된다. 유일한 돌파구는 해외정책으로 외교정책에서의 승점확보는 2020년 대선정국과 관련, 더 절실해졌다.

그 첫 시험대가 북한정책이다. 한 가지 가능성은 서둘러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어 점수를 따는 것이다. 대다수 관측통들의 전망은 그러나 그 반대의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의회의 견제가 어느 때보다 심하다. 결국 시간의 차이일 뿐 트럼프도 그동안의 북한정책이 백일몽이었음을 자각케 되면서 또 다시 ‘화염과 분노’의 정책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될 경우 트럼프 행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마찰이 확대되면서 ‘한미동맹 전선에 심각한 이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북한체제의 첨단전술무기 시험 대대적 선전’- 이는 그러니까 다름이 아니다. 긴 여름날의 꿈, 평화에의 미몽(迷夢)이 깨진데 대한 김정은 식의 불만표현인 것이다. 대한민국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신무기를 또 다시 개발했다는 으름장과 함께 대미 공세 수위조절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도 김정은 대변인 역할에만 온 정성을 마다하지 않고 있는 문재인 정부. 대한민국이 아슬아슬해 보인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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