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결국 이데올로기 대결로…

2018-10-01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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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은 더 이상 내 친구가 아닐지 모른다.”

15개국 정상, 또는 외교장관이 모였다. ‘다자 외교의 꽃’이라 했던가. 그 유엔안전보장이사회 회의석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한 발언이다. 중국이 미국의 중간선거에 개입하고 있다는 비난과 함께.

그 발언이 나온 날은 9월26일. 브렛 캐버노 대법관 지명자 인준 청문회에서 마치 포르노영화를 방불케 하는 낯 뜨거운 설전이 오가던 바로 그 시점이다. 그래서인가. 혹시 국면전환용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도 사실이다.


“국내 정치적 상황이 악화됨에 따라 트럼프는 중국의 미국선거 개입 주장과 함께 국제무대에서 긴장을 확산시키고 있다.” 뉴요커지의 보도로 트럼프 발언을 평가절하하고 있다.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호주에서 또 뉴질랜드에서의 전과(前科)로 보아 중국이 미국 정치, 특히 올 중간선거에 개입할 개연성은 현실적으로 크다.” 디플로매트지의 지적이다.

트럼프의 발언도 그렇다. 어느 날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미국 정치에 중국이 개입하고 있다’- 꽤 오래된 지적이다. 지난 8월1일 미 의회를 최종 통과한 2019년 미 국방수권법(NDAA)도 바로 그 점을 적시하고 있다.

중국을 미국의 당면한 적으로 규정했다. 이와 동시에 외국인 투자, 특히 중국의 투자가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심사를 대폭 강화하는 법안도 NDAA에 담겨 있다.

말하자면 중국의 미국 내에서의 영향력 확장을 제도적으로 막고 있는 것이다.

이후 워싱턴의 고위당국자들이 계속 흘려온 것이 중국의 미국정치 개입설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트럼프는 전 세계가 주시하는 유엔이라는 무대에서 중국의 ‘최고 존엄’이라는 시진핑과의 개인적 관계까지 건드려가며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무엇을 말하나. 미국과 중국관계는 새로운 변곡점을 맞고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무역전쟁으로 시작됐다. 그 갈등이 체제 대결로 변모하면서 이데올로기 싸움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뭐랄까. 중국의 연막외교는 한 마디로 예술수준이었다. 그 현란한 춤사위에 서방세계는 한동안 넋을 잃었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의 민낯이 드러났다. 전체주의에 가까운 권위주의 체제라는 그 진짜 얼굴과 마주치게 된 것. 그러자 마침내 미몽(迷夢)에서 깨어났다고 할까.

이와 동시에 특히 워싱턴이 새삼 주시하고 있는 것은 중국공산당의 통일선전부(UFWD)와 그 조직의 미국에서의 활동상황이다.

마오쩌둥은 일찍이 통일선전부를 국내외 적들을 무찌르기 위한 공산당의 비밀병기라고 극찬했다. 개혁개방이후 이 UFWD는 한동안 로우 프로파일을 유지해왔다. 그러다가 시진핑 체제를 맞아 위상이 부쩍 높아졌다.

미 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시진핑은 이 기구를 대폭 강화해 인권에서, 종교, 티베트, 위구르 문제 등 중국 이미지와 관련된 모든 정책을 이 기구가 통괄토록 힘을 실어줬다.

필요하다면 페이크뉴스 살포라는 극단적 방법까지 동원해 중국의 이미지를 고양시키는 방향으로 내러티브를 통제하는 것이 UFWD의 주 임무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해당국가의 학계, 언론계, 싱크 탱크, 그리고 정계까지 파고드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그런 활동은 많은 경우 선을 넘은 범죄행위다. 또 이를 위해 디아스포라 중국인들을 포섭, 스파이역할을 강요하기도 한다. 이 통일선전부는 중국을 비판하는 해외 인권운동가들을 탄압하는 전초기지 역할도 한다.

겉모양새는 소프트 파워를 통해 중국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기구로 비쳐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경제적 영향력, 비밀자금 공여 등을 통한 유인, 매수 등 탈법적 수법을 동원해 대상 인물이나 기관이 강제로 따르도록 하는 샤프 파워(sharp power)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 중국공산당 통일선전부인 것이다.

중국의 소프트 파워 전파를 위해 전 세계 138개 국가 5백여 장소에 세워진 공자학원(Confucius Institute)도 그 하부조직으로 드러나면서 전체주의 체제 중국에 대한 경각심은 더 높아지고 있다.

요약하면 이렇다. ‘중국공산당의 미국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도전행위는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의 유엔안보이사회 발언의 함의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이데올로기 싸움 양상으로 번지고 있고 이는 자칫 군사패권 다툼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 그만큼 동아시아의 안보지형은 불안정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여전히 대한민국으로 보인다. 그 해가 2004년이니까 세계 최초의 공자학원이 세워진 곳이 대한민국이다. 그 공자학원이 중국공산당 통일선전부 하부조직으로 밝혀지면서 서방세계에서 공자학원은 잇달아 폐쇄되고 있다. 시드니에서, 시카고에서, 스톡홀름에서 등등.

한국은 무풍지대다. 아니 대학마다, 지역사회마다 공자학원 유치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니까 돈을 내고 중국공산당의 선전을 배우고 또 때로 익히겠다는 거다. 6.25는 중국이 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구한(抗美援朝) 중국의 의로운 전쟁이라는 거짓된 역사 등을.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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