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계에 우뚝 선 한국

2018-08-15 (수)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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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에는 백제 의자왕 20년 당시 나·당 연합군의 공격으로 수도 사비성이 함락될 때 백제의 3,000궁녀가 낙화암에서 백마강을 향해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 있다. 이 궁녀들은 패전해서 승전국에 끌려가 화를 면치 못할 바에는 차라리 죽을 각오로 강물에 뛰어내려 죽음을 택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나라끼리 서로 전쟁하다 지면, 그 패전국의 장군이나 군사들이 비굴하게 목숨을 부지하느니 차라리 자진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백성들도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경우가 있었다. 모두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택하는 편이 옳다고 생각한 결과이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영국의 식민 지배하에 살던 미국인들의 가슴에 벅찬 감동을 안겨주었던 이 명언은 거의 240년전 당시 영국의 억압속에 착취를 당하고 있던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당시 의회 의원인 헨리 패트릭이 던진 말이다. 오늘날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도 이런 피맺힌 과정을 거쳐 이른 것이다.


한국은 조선말기, 대원군이 쇄국정책을 고수하다 세계열강의 각축속에 일본에 의해 합병당하는 불행한 사태를 맞게 된다. 이로 인해 36년간 일본의 갖은 압박과 수모속에서 겨우 견디다 마침내 나라와 자유를 되찾았다. 바로 조선의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많은 애국열사들의 눈물겨운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유관순이다.
유관순은 귀가 잘리고 팔과 다리가 잘려나가고 머리가죽이 벗겨져도 나라 없는 슬픔은 참을 수 없다고 항거하다 끝내 숨졌다. 결국 조선은 일본의 항복으로 나라를 되찾는다. 하지만 광복의 기쁨도 잠시, 북한의 침략으로 6.25전쟁이 일어나면서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게 된다.

이 전쟁으로 남한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전국이 초토화되고 피바다로 변했다. 남한만 133만 명이 목숨을 잃고 1,000만명의 이산가족과 수많은 고아가 속출된 이 전쟁은 인류역사에 제1,2차 세계대전 등과 함께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전쟁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한국의 정세는 그야말로 격동의 시절, 혼돈 바로 그 자체였다. 미군과 소련군의 남북한 분할진주와 3.8선의 분단, 그리고 신탁통치 찬반의 격돌, 미소 대표단의 대립 등이 잇달아 이어지면서 조국의 운명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와 같은 아슬아슬한 형국이었다.
숱한 역경을 딛고 한국은 이제 세계 최빈국 중 하나에서 근대화와 세계화를 이루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한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고비 때마다 올바른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을 가지고 나라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애쓴 애국인사들과 함께 한민족의 고달프고 피눈물 나는 삶의 역정이 있었다.

60,70년대에는 월남파병, 서독광부 및 간호원 파견 등과 함께 온 국민이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새마을운동을 벌여 보릿고개를 벗어났으며, 세계기능올림픽에서 1위를 거듭, 여러 나라에 기능공들을 유치하기 시작하면서 한국경제는 가난을 극복하기 시작했다. 이어 88서울 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한국 기업들이 세계로 진출, 삼성의 전자 및 IT기업이 세계를 제패하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인도까지 진출해서 인도의 30대 천재과학자를 영입해 세계 IT 초강국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한국인들이 미제와 일제라면 사족을 못 쓰던 시절이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한국의 경제력과 위상은 날로 드높아지고 있다.

모든 결실은 다 나라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기적적으로 맞은 8.15해방을 계기로 모두가 힘차게 노력한 결과 이루어졌고, 이런 과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온 몸을 던져 희생한 수많은 애국지사와 열사들의 조국애와 동족사랑에 다시 한 번 고마움을 느낀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전세계 우방국가, 그리고 숨진 용사들에게도 경의와 뜨거운 감사를 표한다. 우리도 이제는 그들이 베푼 희생과 은혜를 기억하고 우리보다 열악한 나라에 되갚는 자세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juyoung@koreatimes.com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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