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상기후와 난민위기

2018-08-06 (월) 옥세철 논설위원
작게 크게
인류의 역사는 이동의 역사다. 성서도 어찌 보면 끊임없이 유랑하는 인류, 그 이동의 기록으로도 볼 수 있다.

약속의 땅을 향해 조상 대대로 살 던 곳을 떠나 유랑 길에 오른 아브라함, 기근이 덮치자 이집트로 흘러들어간 야곱의 일족, 그리고 박해를 피해 이집트를 탈출해 가나안 땅으로 되돌아가는 이스라엘 민족. 엑소더스로 점철된 성경기사는 난민의 기록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전 지구촌이 폭염에 신음하고 있다. 북극의 기온이 섭씨 30도를 넘었다. 스웨덴은 사상최악의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폭염은 캘리포니아 주에 산불을 불러와 국가재난사태가 선포됐다. 폭염으로 수 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자 일본정부는 에어컨을 켜고 잘 것을 당부하고 있다. 불가마 속에서 허덕이기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이상고온에, 홍수와 폭우… 가뭄에, 물 부족사태. 하루가 멀다고 전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이다. 뭔가 불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대재난의 전조가 아닐까 하는.

‘이제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 시리아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리비아에서, 또 저 멀리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지역에서 난민들이 유럽으로 떼 지어 몰려들었다. 그 숫자가 100만선을 돌파하자 유럽의 정치가, 사회제도가 무너져 내렸다. 2015년께의 일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유럽의 풍경을 근본적으로 뒤바꾼 그 난민위기는 그러나 이제 시작에 불과한 것으로 진단했다.

‘21세기의 첫 번째 난민위기’로 불리는 유럽난민사태는 이슬람문명의 위기가 주 원인으로 지적된다. 아랍의 이슬람문명은 한 마디로 현대화에 실패했다. 그 결과는 만연한 테러에, 빈곤의 악순환, 전쟁, 극심한 종교탄압에 따른 대량학살이다. 그 아랍 문명권 전체가 이제는 거대한 내전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수니와 시아, 양 파의 대회전이 임박한 것이다.

문제를 더 심각하게 하고 있는 것은 ‘불안정 호’(arc of instability)로 불리는 아프리카와 남아시아일대의 ‘실패한 국가’ 내지 ‘불안정 국가’들이 맞고 있는 상황이다. 고질인 빈곤문제는 해결 기미조차 안 보인다. 게다가 인권탄압은 날로 극심해지면서 난민행렬은 계속 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이제 시작일 뿐’일 수 있다. 가뭄, 홍수, 이상고온, 냉해 등 전 지구적인 현상이 된 이상기후는 심각한 물 부족, 식량 부족 사태 등을 가져오면서 기아, 내전, 전쟁 등을 유발해 최악의 인도주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전 세계의 난민인구는 현재 6800여 만으로 집계되고 극심한 기후변화로 발생한 난민 수는 2008년 이후에만 2250여 만에 이르는 것으로 유엔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아직까지는 전쟁, 내전, 종교적 박해에 따른 제노사이드(대량학살) 등 인재에 따른 난민 수가 가뭄, 홍수 등 천재에 따른 난민 보다 훨씬 많다. 그 상황이 기후변화와 함께 역전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하나같은 경고다.

“오는 2050년께 까지 예견되는 지구촌 최대의 ‘블랙 스완 이벤트(black swan event-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사건)’의 하나는 기후변화가 될 것이다.” 일본의 싱크 탱크 아시아 퍼시픽 이니셔티브의 전망이다.

지구 온난화를 이대로 방치할 경우 2050년께면 북극은 물론 티베트고원지대의 얼음도 모두 녹으면서 지구 생태계를 크게 위협하게 된다는 것. 또 이보다 앞서 2035년께에는 전 세계 주민의 절반이 물 부족 사태에 직면하게 되고 중국의 경우 그 피해는 더 심각할 것이라는 경고도 던지고 있다.

기후변화는 인간이 거주지를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손’역할을 한다. 심각한 가뭄으로 농토를 버리고 떠난다. 폭우에, 홍수로 하루 밤사이 모든 것을 잃었다. 이상고온으로 도저히 살 수가 없다. 해수면 상승으로 섬 전체가 바다 속에 잠긴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등 중미지역, 또 서남 아프리카지역, 방글라데시 등지에서 이미 목도되고 있는 현상이다.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급격한 환경변화로 살던 곳을 버리고 정처 없는 유랑의 길을 떠나는 난민 인구는 2050년께에는 20여 억에 이른다는 것이 미국 국방부 미래예측의 전망이다.

인류역사와 함께 시작됐다. 그 난민문제는 오늘날에도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고 기후변화와 함께 ‘21세기 최악의 인도주의 위기’로 번져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예외일까. 많은 한국인들은 예외라고 애써 생각하는 모양이다. 제주도에 예멘인 549명이 들어와 난민 신청을 했다. 그러자 난민수용반대 국민청원에 6월13일부터 한 달 동안 71만4875명이 참여했다는 보도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한국의 생태계도 온대성에서 아열대성으로 급속히 변화하면서 해수면 상승과 함께 가뭄과 홍수가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는 등 급격한 기후변화가 예상된다. 그 경우 식량자급률이 23%에 불과한 한국으로서는 심각한 식량부족문제에 봉착하게 되고 이는 자칫 안보문제와 직결될 수도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다.

거기에 하나 더. ‘실패한 국가’로서 완벽한 조건을 갖춘 김정은 체제의 북한을 머리에 이고 살고 있다. 그 지정학적 조건 때문에 한반도는 최악의 인도주의 위기 발생 가능성이 큰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난민문제에 보다 열린 자세로 접근하는 성숙한 한국의 모습을 보고 싶다.

<옥세철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