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원 앞을 지나다가

2018-07-26 (목) 08:10:36 이정자 워싱턴문인회
크게 작게
팽개치듯 내다 놓다
늦은 겨울잠에 빠진 거실의 화분 몇 개

애틋한 사랑처럼 찾아온 봄 햇살
먼지 낀 선인장 가시 위에 누워 보다가
늘어진 가지 사이 깃들어도 보다가
웅성거리는 세 평 베란다
유월이 가는데, 다 지나가는데
봄이 오면 갖가지 꽃들 심고 물 주며
나누었던 은밀한 얘기 선한데
틈새마다 끼워놓고 떠나버린 세밀한 시간
겅중겅중 건너뛰느라 놓쳐버린
세월과 나 사이의 괴리
켜켜이 쌓여버린 마디마디 녹들
안 돼, 안 돼
손사래 치며 달려나와
화원 앞을 지날 때마다 누르던 갈등
수 없는 망설임

순간, 운전대를 꺾다

제라늄 베고니아 채송화 몇 포기
트렁크에 싣고 돌아오는 차 안
내 안의 세포들 다 일어나 휘파람을 분다
날아든 별과 나비, 벌써
내 꽃밭 분주하다

<이정자 워싱턴문인회>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