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아있는 한인사회의 정

2018-07-22 (일) 10:45:44 이동철 VA 애난데일 골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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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다소 떨리는 마음으로 버지니아 로럴 힐 골프장에 들어섰다. 얼마나 올까? 참가자가 너무 적어 곤란한 일이 생기는 걸 아닐까 하는 조바심도 들었다. 갑작스럽게 준비한 골프대회였다. 최자현 워싱턴한인골프협회 회장이 갑자기 희귀병으로 투병 중이란 소식을 들었다. 병세도 심각하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병마와 싸워낼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은 것이었다.

본인은 얼마나 가슴 아프고 낙심하고 있을까.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지인들은 모두 한마음이었다. 항상 활기차고 많은 봉사활동도 한 그이였다. 모두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뜻을 모았다. 조금이라도 그가 모진 병마와 싸우는데 용기와 힘이 되어 주자고 하였다. 그래서 부랴부랴 골프대회를 열게 된 것이다.

워낙 갑자기 준비한 행사인데다 주중이라 과연 얼마나 참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그건 기우였다. 참가자들이 몰려들었다. 당초 70명을 예약해놓았는데 92명이나 온 것이다. 만에 하나를 대비해 잡아놓은 인근의 올드 히코리 골프장으로 스물 두 분이나 자리를 옮겨야 했다. 어느 한 분도 불평하시는 분이 없었다. 그 순간 가슴에서 뭔가 뭉클한 것이 올라왔다. 우정은 날개 없는 사랑이라는 시인 바이런의 말도 떠올랐다.


등록을 하는데 또 놀랐다. 대다수가 참가비 외에 별도로 기꺼이 도네이션을 해주셨다. 어떤 분은 거액을 내놓으시기도 했다. 어떤 분은 골프 칠 시간이 없다며 돈만 내고 가겠다고 하셨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돕고 격려해주려는 이심전심의 아름다운 마음씨들이었다.

투병 중인 최 회장은 골프대회 소식을 듣고 카톡으로 인사를 대신 전해왔다. “많은 분들께 걱정을 끼쳐 드려 어떻게 이 모든 걸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빨리 회복해서 씩씩하게 건강한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보답하는 거겠죠.”

그 인사를 전해 듣는 참석자들 모두 숙연해지며 빠른 쾌유를 빌었다. 도중에 비가 와 잠시 중단됐지만 대회는 질서정연하고 매너와 배려심으로 가득 찼다.
행사 후에 한 분은 이런 카톡을 보내왔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하루였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어떤 분은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제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긴 자리였습니다. 한인들의 따뜻한 정에 오히려 제가 감동을 받고 갑니다.”

평소에 한인사회를 접하며 나는 좋지 않은 면을 많이 보았다. 별 것도 아닌데 서로 싸우고 시기하고 거짓말하고…. 그래서 아예 한인사회에 나가지 않는다는 분들도 많다.
그러나 나는 이번 행사를 치르면서 나의 편견을 수정해야 했다. 한인들만큼 가슴이 따뜻한 민족도 없구나, 우리만큼 정이 깊고 이웃을 서로 도우려는 좋은 커뮤니티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이런 마음들이 씨앗이 되어 점점 우리 사회로 번져나가면 얼마나 아름다운 한인 동네가 될까 그려보았다. 한편으로는 최자현 회장 덕분에 나의 좁은 소견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고 좋은 사람들의 인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다. 정말 고마운 날이었다.

<이동철 VA 애난데일 골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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