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북한 비핵화, 그리고 중국 변수

2018-07-16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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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했다가 바람을 맞았다. 핵 폐기와 관련해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김정은은 그 타이밍에 맞추어 감자 농장 시찰을 같다. ‘폼페이오 대신 감자’를 만난 것.

그 뿐이 아니다. 미국은 갱스터 같은 짓을 한다는 욕설도 들었다. 미국이 받은 수모는 이로 그치지 않는다. 미국과 북한은 판문점에서 지난12일 미군 유해 송환 협의를 갖기로 했으나 북한 측은 나타나지도 않았다.

뭐랄까. ‘역대’급의 외교적 망신을 당했다고 할까. 워싱턴이 소연(騷然)하다. 분노의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시끄러운 것은 ‘트럼프가 당했다’는 자성과 비난의 소리다.


‘애매모호한 성명서나 내고 끝난 6.12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부터가 잘못 된 출발이었다’-여기저기서 나오는 지적이다. 이와 동시에 ‘트럼프의 북한정책은 도산상황에 직면했다’는 비판도 줄을 잇고 있다.

그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의 친서를 공개하면서 소년 독재자에 대한 찬사를 계속 늘어놨다. 그 아부성(?) 발언에 아연실색, 워싱턴은 더 소란하다. 친서에는 핵 폐기 의사를 밝힌 대목이 하나도 없다는 지적도 나오면서.

트럼프는 그러면 김정은의 기만전술에 놀아난 것인가. “그렇게 보는 것은 속단이 아닐까.” 허드슨 연구소의 리베카 헤인리히의 진단이다.

‘팀 트럼프’의 구성원 면면을 보자. 존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을 비롯해 4성 장군 출신인 해리 해리스 신임 주한 미 대사에 이르기까지 북한문제에 관한 한 초강경파 인사들로 포진돼 있다. 그런 그들이 김정은의 상투적인 기만전술에 속는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

그러면 왜 ‘팀 트럼프’는 북한 핵 폐기에 진전이 있다는 식의 유화적 수사로 일관하고 있을까.

일종의 ‘강매(hard-sell)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어떤 방식을 동원하든 파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바이어(buyer)의 탐욕, 허영, 또는 공포심도 파고 들 필요가 있다. 세일즈맨은 그 과정에서 아첨에 가까운 발언도 마다하지 않는다.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이후 트럼프의 일관된 김정은 찬양(?)은 미국 언론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다. 김정은이 들으라는 거다. 그러니까 바로 이 강매 마케팅 수법에 충실한 것이 ‘팀 트럼프’의 일관된 수사라는 거다.


그렇다고 바이어가 구입결정을 하는데 무한정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볼턴 안보보좌관의 발언이다. ‘1년 안에 북한의 비핵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못을 밖은 것. 다른 말이 아니다. 11월 중간선거의 시점까지는 참고 기다릴 수 있다. 그 이후에는 구체적 비핵화 플랜을 북한 측이 내놓도록 무언의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그러면 그 데들라인을 지켜줄까. 전망은 부정적이다. 비핵화에 대한 미국과 북한의 상이한 해석이 한 원인이다. 그러나 보다 주된 이유는 중국변수에서 찾아진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왜 평양방문에서 그토록 홀대를 받았나. 그 배후로 중국이 지목된다. 트럼프가 트위터를 통해 경고한 것도, 또 린지 그레이엄 연방 상원의원이 지적하고 나선 것도 바로 중국의 배후 손길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계속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관세폭탄에 대한 보복책으로 베이징은 북한 핵 카드를 사용하고 있다는 비난을 한 것.

아시아 타임스의 분석은 한 걸음 더 나간다. 중국의 북한 핵카드 동원은 무역전쟁에 따른 단순한 ‘되받아치기’(tit-for-tat)정도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거다. 미국을 아시아지역에서 몰아내려는 베이징의 원대한 지정학적 전략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를 방해한다. 이를 통해 베이징이 노리는 것은 미국과 한국 양국관계의 이간이다. 북한 비핵화에 진전이 없으면 미국과 북한관계는 물론 남북한관계도 소원해질 수 있다.

김정은 체제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올인’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한국의 문재인 정부는 그런 상황이 올 때 미국을 남북화해를 막는 세력으로 원망, 여론을 몰아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아시아 타임스는 내다 본 것이다.

지난 5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계획이 취소되자 한국의 여권 일각에서 감지된 게 바로 이 같은 움직임이었다. 북한보다는 볼턴 안보보좌관의 강성발언이 문제라는 지적과 함께 그 책임을 미국에 돌리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것.

그러니까 북한 핵문제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간극을 가급적 극대화시킴으로써 한미동맹의 이완, 더 나가 동맹와해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미동맹 와해는 북한의 이해와도 일치, 미-중 무역전쟁 상황에서 북한과 중국은 새로 밀월관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드러나는 큰 그림은 이렇다. 북한이 비핵화로 갈 것인지 그 윤곽은 미국의 중간선거 때쯤이면 잡혀진다. 그 때까지 아무 진전이 없을 때 한반도 상황은 다시 ‘분노와 화염’의 긴장상태로 되돌아 갈 수도 있다. 그리고 이후 극적인 반전이 없을 경우 트럼프 행정부 1기가 끝나가는 어느 시점에는 충돌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미국 입장으로서는 북한 비핵화문제에 관한 한 도덕적 우위를 점령하게 된다. 게다가 정권 재창출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 될 때 트럼프는 북한에 대한 군사옵션을 주저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맞는 전망일까.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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