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목포의 눈물

2018-07-10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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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악시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1935년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의 한 구절이다. 일제에 의해 착취당하며 비참한 삶을 살고 있던 한민족의 심정을 표현한 이 곡은 국민가요의 반열에 올라 있다.

그런데 이 곡에 등장하는 목포 삼학도 주민들의 눈에서 요즘 다시 눈물이 흐르고 있다. 대부분 주민이 노인들로 이들 발 노릇을 하던 마을버스 운행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이곳 노인들은 생명선과 같은 버스 노선을 일방적으로 끊는 것은 죽으라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라며 즉각 재개를 요구하고 있지만 당분간 어려울 전망이다.


이렇게 된 것은 7월 1일부터 노동자의 최대 근무 시간이 52시간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버스회사들은 부족한 인력을 기존 운전사들을 장시간 근무하게 하는 것으로 충당해 왔는데 이것이 불가능해지자 손님이 적은 지역 순으로 노선 운행을 중단한 것이다. 근무 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면 1만8,000명의 추가 인력을 고용해야 하는데 단 기일 내 이를 마련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주민들도 불만이지만 운전기사들은 기사들대로 입이 나와 있다. 근무 시간이 줄면서 집으로 가져가는 돈이 월 80만원 정도 줄어들게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1일부터 직원 300인 이상 공공 기관과 기업은 주 52시간 이상 일을 시키지 못하도록 했다. 한국인의 연 근로 시간은 2,052시간으로 OECD각국 중 멕시코의 2,348시간 다음으로 많다. 문재인 정부가 이런 제도를 도입한 것은 OECD 회원국 중 최장에 가까운 한국인의 근무 시간을 줄여 손학규가 말했던 ‘저녁이 있는 삶’을 국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시행되기 전부터 경제 현실에 대한 충분한 고려와 대책 없이 졸속으로 만들어졌다는 비판이 많았다. 버스 운전사 예만 보더라도 기사들이 장시간에 걸친 운전으로 졸음운전 등 사고를 내는 문제가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대체 인력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법으로 장기 근무를 막는 것은 부작용이 예견돼 왔다.

근무 시간이 줄다 보니 집에는 일찍 갈 수 있지만 초과 근무 수당 등이 깎여 “저녁은 있지만 저녁밥이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대기업 수행 기사로 일하고 있는 한 회사원은 근무 시간이 주 70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어드는 바람에 300만원에 달하던 월급이 100만 정도 줄었다. 이를 메우기 위해 직장이 끝나면 동시 픽업 대리 운전기사로 뛰고 있다. 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대리 기사로 등록한 사람은 11만 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3만 명이나 늘었다.

문재인 정부도 이번 52시간제가 급하게 시행된 점을 인정하고 향후 6개월 동안을 계도 기간으로 정해 이를 어기더라도 처벌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이로 인한 큰 변화 적응 기간으로는 6개월도 짧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 정책은 올해 초 실시된 최저 임금 대폭 인상안과 맥을 같이 한다. 근로자가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최저 임금을 올려야 하며 이렇게 하면 이들의 지출이 늘어나 경제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가 기치로 내걸고 있는 소위 ‘소득 주도 성장’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인건비 증가로 영세 자영업자의 생존을 위협하고 늘어난 임금을 감당하지 못한 업주들이 고용을 줄여 단순 노동직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음을 각종 통계가 보여주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노동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상여금 등 수당을 임금에 포함시키는 최저임금법 개정을 단행한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최저 임금 대폭 인상의 부작용이 명백히 나타나고 있음에도 노동계는 최근 내년도 최저 임금을 현 7,530원보다 43% 늘어난 1만790원으로 해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지금 한국 경제는 미중 간 무역 분쟁으로 수출 전선에 먹구름이 끼고 각종 지표는 경기 침체를 가리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제 정신인지 묻고 싶다.

경제는 아무리 의도가 좋더라도 결과가 나쁘면 소용없다. 노동계는 무리한 요구를 거두고 정부는 자신이 펴고 있는 정책이 진실로 국민들은 잘 살게 하고 있는지 돌아볼 때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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