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도 눈부신 6월, 제비가 알을 품는 명당 같은 터, 나는 이 집을 떠나 이사할 준비를 시작한다.
사람들은 곧잘 이렇게 얘기하곤 한다. 이민을 떠나온 이들이 비행기 트랩을 내리는 순간 첫발을 디디는 곳이 정착지가 된다고. 나 역시 미국 생활의 시작은 가방을 푼 메릴랜드 전원도시이다. 앞서 간 이들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듣게 되는 것도 살다 보면 때가 있는 것 같다. 노년이 되면 자식에게 넓은 집을 넘겨주고, 노동을 덜게 되는 작은 집으로 옮겨가는 것도 자연스런 수순이라 하겠다. 먼저 추억 털기 작업을 하면서 서랍장에 잔뜩 꽂혀있는 사진첩들을 꺼내놓고 한 페이지씩 낡고 빛 바랜 사진들을 들여다 본다. 주마등처럼 지나간 세월 저편, 6.25동란이 막 끝나고 임시로 사용하였던 허름한 가교사 공터에 쬐끄만 꼬마들이 옹기종기 박혀있는 초등학교 입학 흑백 사진. 얼굴들 뒤로 왠 이불호청이 바람에 펄럭이며 널려있다. 궁색하기 그지없던 그 당시의 사회상을 가늠해 보니 마치 먼 나라 이야기처럼 아득하다.
어느덧 사진 속 또래가 된 손녀들이 연이어 유치원에 들어가고 단체생활을 시작한다. 좋은 학군이란 입 소문 탓인지 조용하고 적막하기까지 했던 동네가 점차 방과후 어린아이들이 뛰어 노는 소리로 시끌벅쩍하다. 이러한 변화가 내게는 세대교체를 예고하는 듯 들린다. 밀물이 밀려오듯 어제 오늘이 다른 골목 안 풍경이다.
오늘따라 산책길을 걷다 보니 도로변 잔디 위에 소소한 생활용품들이 군데군데 널려있다. 아이들이 자라서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장남감들이 대부분이다. 아마도 오늘 우리 동네 가라지 세일 장날이 서는 모양이다. 온 종일 팔아 보았자 푼돈에 지나지 않겠지만, 젊은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경제관념을 주입시키려나? 가라지 세일을 하고 있던 맞은편 집 엄마도 아이들에게 장차 대학에서 경영학 강의를 듣는 것 보다 유익하다는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아이들은 그냥 펼쳐놓은 손때 묻은 장남감 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맹모삼천지교라고 자녀들의 교훈을 위해 어머니가 세 번씩이나 이사를 했다는데, 나 또한 손녀들을 위해 이삿짐 보따리를 세 번씩이나 싼들 어떠랴. 그러나 막상 아담하고 예쁜 언덕 위의 비둘기 집을 떠나려니 마음이 착잡해진다. 수십 번도 더 고르고 고른 이 집을 어렵사리 만나 알콩달콩 살면서 다시는 이 집을 떠나지 않으리란 나와의 약속도 한 여름 밤의 꿈이다.
돌이켜 보면 이 곳에서의 10여 년은 마음 맞는 이웃 친구들과 격의 없는 진한 수다와 늦게 찾아온 취미생활로 더없이 영혼이 자유롭고 행복했던, 이 집이 준 꿈 같은 선물이었다. 봄이 되면 손바닥만한 꽃밭에 예쁜 꽃을 심고 비단결 같은 잔디 위에 수시로 잡초를 뽑아주면서 흐뭇하게 바라보던 세월들, 윤기나게 반들거리는 마루바닥을 오가며 그 흔한 카펫이 아닌 나무결을 사랑했던 내가 아닌가! 아무것도 방해 받지 않고 사색하며 걷던 산책길은 또 어쩌고.
피부색은 다르나 한결같이 만나면 웃어주고 담소했던 좋은 이웃들. 죤 할아버지와 메리 그리고 맞은편 집 젊은 부부 세라와 데렉은 우리 부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동화책 속의 파랑새 같은 꿈은 아니지만 아직도 가지고 있는 희망은 있다. 언제나 내 속에 긍정적인 마음이 있고 웃음이 있으니 어떠한 환경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내가 있는 그곳은 언제나 낙원이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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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순 우드스톡,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