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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정신적 가치 추구… 어머니의 문학은 내 작품의 토양”

2018-04-16 (월) 샌프란시스코-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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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고 박완서의 큰딸 호원숙 작가

“최고의 정신적 가치 추구… 어머니의 문학은 내 작품의 토양”

딸 호원숙씨가 고인이 된 어머니 박완서씨와 생전에 찍은 사진.

고 박완서씨의 장녀 호원숙씨는 어머니의 문학을 통해 자신을 객관화하는 힘과 자존감을 배웠다고 한다.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 등 산문집을 쓴 작가 호원숙씨는 어머니처럼 작가로서의 집중력과 균형감을 배우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고 박완서씨는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서 ‘나목’이 당선해 등단한 뒤 81년 ‘엄마의 말뚝’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한국 문단의 대표적인 작가로 활동하다 2011년 향년 80세로 별세했다. 다음은 호원숙 작가와의 일문일답.

- 어머니로서의 박완서는

▶나에게는 절대적이었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어머니를 바라보는 나의 눈이 달라졌다. 따르기가 힘들었고 어머니라는 존재에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웠다. 나이가 더 들면서 어머니의 삶과 문학을 통해 더 사랑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 글에서 느껴지는 소탈함과 실제의 박완서는 어떤가

▶그렇게 물으니까 ‘소탈함’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사전적 의미로는 “예절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수수하고 털털하다”고 되어 있다. 어머니는 검소하고 소박했지만 털털하지는 않았고 예절을 모르는 천박함은 견디지 못해 하셨다. 물질적으로는 검박했지만 정신적인 가치는 항상 최고를 추구하셨다.

- 박완서의 딸로 문학이 지니는 의미는

▶나에게 문학은 모든 것이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 손에 떠나지 않았던 책과 현대문학이란 글씨가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그 세계를 동경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능력을 따를 수 없다는 걸 일찍이 알았다. 잡지사에 있는 동안 글을 쓰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도 알았다. 1990년 즈음 두 아들을 키우며 살림하는 것도 버거울 때 어머니가 나에게 연대기를 쓰라고 하셨다. 너만큼 쓸 사람이 없다고 나에게 글을 쓸 기회를 주셨다. 그때 처음으로 원고지를 꺼내 어머니의 연대기를 썼고 그 제목을 ‘행복한 예술가의 초상’이라고 했다.

- 작가로서 호원숙은

▶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50대 이후이지만 쓰고 싶은 소재로 자유롭게 썼고 책도 낼 수 있었다. 어머니를 지근거리에서 관찰하고 배우며 일관성 있게 문학을 중심으로 살아온 것에 스스로 감사하고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자료를 정리하고 출판을 하도록 하는 일련의 작업들이 나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한다. 내 자신의 소망이 있다면 내가 태어난 1954년부터 1970년 어머니가 작가로 세상에 나오기까지 시간의 기억을 쓰는 것이다.

- 좋아하는 어머니의 작품은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으며 마음 속으로부터 감동했다. 그리고 ‘미망’을 읽으며 어머니를 작가로서 존경하게 되었다. ‘저문 날의 삽화’의 단편들, 어머니의 산문들을 좋아한다.

- 박완서의 딸로서 하고싶은 말은

▶어머니는 작가로서나 생활에서나 구태의연하지 않았고 고리타분하지 않았다. 새로운 것과 변화를 받아들이고 미래를 향해 눈이 열려 있었다. 독자들도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읽기 바란다. 어머니 글 속에는 많은 비밀과 예지가 숨어 있다. 읽는 사람이 꼭 필요한 메시지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작가만의 언어가 빚어내는 묘미에 이끌릴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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