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moron’ 인가, ‘genius’ 인가

2018-04-09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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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유행을 타고 있는 놀이가 있다. 트럼프 때리기다. 리얼리티 TV쇼 진행자에 형편없는 바람둥이다. 게다가 내건 공약이란 것도 황당하기 짝이 없다. 그런 트럼프가 대통령선거에 뛰어들자 조크로 알았다.

그 트럼프가 결국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백악관에 입성했다. 그러자 미 주류언론은 일제히 경고음을 발했다. ‘백악관 발(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것’-.

한마디로 천박하다. 인권, 자유, 민주주의 등 미국의 전통적 가치에는 별관심이 없다. 게다가 충동적이다. 그러니 리얼리티 TV쇼를 재연하듯 백악관을 운영 할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타임지가, 또 CNN이 일찍이 보인 우려다. 트럼프 시대의 미국은 국제질서 불안정의 제 1원인이 될 것이라는 불길한 진단을 곁들이면서.


이후 미 주류언론의 트럼프 때리기는 연중무휴로 이어졌다. 온통 거짓말에, 러시아 스캔들에, 동시다발성의 섹스 스캔들, 그리고 툭하면 발표되는 트위터를 통한 고위 당국자 해임 통보. 이런 뉴스의 홍수 속에 미 주류언론은 트럼프 때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북한 핵 위기로 전쟁발생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 그 주 원인 제공자는 누구인가. 김정은이 아니다. 트럼프다. 한국 국민의 정서라고 한다. 이 역시 미 언론의 트럼프 때리기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몹시 충동적으로 보이는 트럼프가 더 위험하다는 인식이 부지불식간에 한국사회에 팽배해진 것이다.

미 주류언론의 보도대로라면 트럼프는 한국의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슷한 운명에 맞닥뜨려야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괴이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 지지율이 오히려 올라가면서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CNN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지지율은 지난 2월 35%에서 42%(3월 현재)로 뛰어올랐다. 라스무센 조사는 트럼프지지율이 49%로 50%선에 육박하고 있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 답의 상당부문은 라스무센 조사에서 찾아진다. 미 유권자의 52%는 주류언론이 트럼프 어젠다에 지나칠 정도의 반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 다른 말이 아니다. 주류언론의 트럼프에 대한 지나친 적대감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오고 있다는 거다.

다른 이유도 제시된다. 감세정책이 어느 정도 먹혔다. 그러나 그보다는 해외정책에서 올린 승점이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그 하나가 예상을 깬 푸틴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제재조치다.

김정은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냈다. 그 뿐이 아니다. 중국에 대한 무역압박이 주효했다. 바로 이 부문에서 올린 승점 때문에 또 다시 불거진 포르노 여배우와의 섹스스캔들 악재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지지율은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거다.


동시에 트럼프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고 있다. idiot(백치), moron(저능아), jerk(얼간이)등이 그동안 트럼프에 따라 붙던 수식어다.

“말 그대로 트럼프가 moron이라면 두어 달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 다시 말해 김정은이 한국으로, 중국으로 다니며 허겁지겁 평화공세를 취하는 사태가 가능했을까.” 미 언론인 마이클 추가니가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SCMP)지 기고를 통해 던진 질문이다.

어찌 보면 변덕스럽다고 할 정도다. 그런 트럼프 특유의 예측불가능성을 허풍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기에는 너무 두려운 존재니까. 그 결과 트럼프는 오바마도, 클린턴도, W. 부시도 이루어내지 못한 대북, 대중 정책에서 커다란 성과를 얻어 내고 있다는 평가다.

“분명한 아웃사이더다. 그 장점을 살려 트럼프는 미국이 맞고 있는 오랜 위기 해결에 나서고 있다.” 후버연구소의 빅터 데이비스 핸슨의 지적이다. 북핵문제,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 불법이민문제 등이 그것으로 십 수 년 이상을 끌어왔다. 그러나 역대 행정부는 모두 대책마련에 실패했다.

북핵문제의 경우 ‘6자회담’이니, ‘전략적 인내’ 등이 제시됐지만 근본에 있어서는 북한에 돈을 주고 비핵화를 추구하는 것으로 모두 실패로 끝났다. 중국과의 무역불균형 해소도 그렇다. 중국의 속임수에 번번이 당하면서도 중국의 경제발전은 언젠가 민주발전으로 이어진다는 자위와 함께 별다른 조치를 취해오지 못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함께 상황은 일변했다. 군사조치에 겁먹어 김정은은 대화에 나섰다. 관세폭탄에 놀란 중국은 시장개방 약속과 함께 꼬리를 내리고 있다. 무엇이 이를 가능케 했나.

워싱턴 인사이더 출신인 전임 대통령들은 지나칠 정도로 전통적인 외교와 무역 프로토콜에 매달렸다. 아웃사이더 출신인 트럼프는 그 관행을 무시했다. 비유하자면 아무도 풀 수 없는 고르디우스 매듭을 칼로 베어버린 알렉산더의 수법을 답습했다는 것이 핸슨의 지적이다.

북한 핵 위기, 중국과의 무역전쟁-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니 아직은 예측을 불허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11월, 그러니까 중간선거 전 어느 시점 이 두 문제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될 때 트럼프는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moron이 아닌 외교의 genius로 불리게 될까.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트럼프 옹호론자여서가 아니다. 트럼프의 외교적 성공은 한반도 평화는 물론 미국의 번영으로 이어져서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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