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평창 그리고 이민자 자녀

2018-02-24 (토) 노 려 웨체스터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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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이 김이 금메달을 받은 것보다 더 감동적인 것은 딸의 경기를 바라보다 껑충 뛰며 환성을 지르는 클로이의 부모였다. 올림픽 전 TV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운동도 중요하지만, 대학공부가 더 중요하지요”라고 말하던 그 부모의 지적이고 차분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데다 자식 둔 처지가 남의 일 같지 않아 더 마음이 갔다.

이민자니 드리머니 하는 문제가 많은 요즘 이민자의 자녀가, 그것도 성이 김씨여서 누가 봐도 다 한국인인줄 아는 선수가 미국을 대표해서 금메달을 받았으니 한인들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또한 한국에서 열린 올림픽이니, 한국 사람들에게도 우리 이민자를 세워준 것이다.

평창에 가 있는 나의 아들은 거의 매일 세 번씩 음식 사진을 보내온다. 커다란 쟁반에 동그랗게 줄맞춰 쌓여있는 투명하도록 싱싱해 보이는 복어회, 풍성한 모듬회, 대야 같은 그릇에 가득 담긴 물회, 뿐인가 온갖 전골 음식에 두툼한 돼지고기 구이까지. 상에는 꼭 소주와 맥주가 곁들여져 있다.


한번은 20여명의 미국인 기자들과 함께 식당에 앉아 있는 사진을 보내왔다. 아무리 미국 미디어의 기자로서 평창에 취재를 간 아들이지만 확실한 한국 얼굴을 하고 있으니, 미국 기자들은 의례히 아들에게 한국 음식에 대해 물어본다고 했다.

한국인들을 취재할 때 한국말로 “저는 OOOO기자입니다. 이번 올림픽을 보신 소감이 어떠신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세요”를 여러 가지로 버전으로 연습해 간 아들이다. 좀 더 한국어를 열심히 가르쳤어야 싶었지만 필요에 따라 자신이 알아서 잘 해나가고 있다.

예전에는 많은 한인들이 자녀를 변호사, 의사, 금융인 등으로 키워내려 했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클로이 김처럼 뛰어난 운동선수가 있는가 하면, 가깝게 지내는 친지의 자녀 중에는 만화영화 감독이 있고, MSNBC의 기자도 있고, 미슐랭 별을 딴 바비큐 레스토랑 주인도 있다.

이들은 한국인 얼굴이지만 엄연히 미국을 내세워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곳곳에서 여러 모습으로 미국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우리 2세들이 어렵게 터전을 잡은 부모에게 보람을 한껏 안겨 주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 평창 올림픽이다.

<노 려 웨체스터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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