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최악의 순간 그래서 희망이다

2019-06-29 (토) 유제원 워싱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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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축구의 계절이다. 한인들의 관심이 남달랐던 유럽 챔피언스 리그를 비롯해 한국 축구의 새로운 역사가 된 U-20 월드컵, 남미축구 최강자를 가리는 코파 아메리카, 축구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유로 2020 예선전, 그리고 프랑스에서 열리고 있는 여자월드컵까지 하루 종일 축구경기만 봐도 질리지 않을 만큼 다양한 경기가 펼쳐지고 있다.

한인사회 관심은 단연 한국축구의 간판스타 프리미어리거 손흥민(27, 토트넘) 선수와 ‘골든볼’을 손에 쥔 한국축구의 미래 이강인(18, 발렌시아) 선수다.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선수들은 한국뿐만 아니라 한인들에게도 자랑이다. 당장 학교에서 축구하는 아이들을 보면 과거에는 ‘메시’나 ‘호날두’ 같은 축구스타를 흉내 내던 학생들이 최근에는 서로 손(SON, 손흥민)이라고 뽐낸다. 자연스레 한인학생들에게까지도 기분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파란만장했던 한국축구의 과거를 떠올리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실력도 체력도 부족해 국제무대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그저 정신력으로 싸우자고 했던 과거의 기억이 새삼스럽다. 지난 11일 열렸던 미국과 태국의 여자 월드컵 조별 예선전을 보면서 잊고 있던 기억, 1954년 처음으로 월드컵에 출전했던 한국대표팀의 과거를 떠올리게 됐다.


태국 여자 대표팀은 강력한 우승후보 미국을 만나 13대0으로 대패했다. 축구경기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월드컵 역대 최다 득점, 말도 안 되는 기록을 달성한 미국은 기뻐하며 자축했지만 이러한 수모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태국으로서는 두고두고 잊지 못한 수모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도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헝가리에 9대0, 터키에 7대0, 큰 점수 차로 패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고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 지난 2002년 한국 월드컵 4강 신화의 감동은 아직도 여전히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생생한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태국 대표팀의 13대0 패배, 당장은 극복하기 힘든 최악의 순간이겠지만 언젠가 맞이하게 될 최고의 순간을 위한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 비록 현실의 벽이 높고 언제가 될지 모르는 멀고 험한 길이더라도 전 세계 수많은 축구 팬들은 언제나 새로운 반전 드라마의 감동을 고대하고 있다. 최악의 순간, 그래서 희망이다.

<유제원 워싱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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