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존버와 손절 사이

2018-02-03 (토) 최희은/뉴욕지사 경제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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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17일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에서 비트코인이 개당 1만9,205달러로 최고점을 찍은 후 한 달 만에 9,833달러로 반토막이 나고 이더리움과 알트코인 등도 폭락을 거듭할 때, 한국의 게시판 뿐 아니라 미주 한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존버’의 행렬이 이어졌다.

존버는 최근 한국에서 암호화폐 투자가 유행하면서 새롭게 생긴 ‘끝까지 버틴다’는 의미의 속어로 가격이 급락해도 꿋꿋하게 버티면 오른다는 희망이 담긴 말이다. 사이트에는 ‘걱정 마시고 존버 하세요’ ‘이더리움이 무너지네요 그래도 존버인가요?’ 등등의 격려와 하소연이 계속 등장했다.

이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한 이유는 암호 화폐가 이전에도 등락을 거듭해왔고, 존버한 이들이 결국 그 시기를 넘기고 드디어 비트코인 1만9000달러의 환희를 경험하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6월 기자가 암호화폐 광풍 기사를 쓸 당시 이더리움의 가격은 250달러였다.


당시 일명 ‘개미’들이 몰리면서 각종 게시판에는 ‘이제 끝물이다’라는 평가가 팽배했다. 하지만 이더리움은 지난해 말 1300달러를 넘어섰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1월 중순 화폐 가치 폭락 이후 시장은 전반적으로 잠잠해졌지만 기존 거래자들 중 상당수는 존버를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씁쓸하지만 존버 중인 투자자들의 심정을 이해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돈이 돈을 버는 사회구조 하에서 흙수저들의 신분상승의 길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혜성같이 등장한 암호화폐는 신분상승의 동아줄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주고도 남을 법하다.

하지만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과 열망이 클수록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게 되고, 쪽박의 위험도 커진다. 부자를 만들어주겠다는 정치인의 헛된 약속에 희망을 건 것이 한국을 헬조선으로 이끌었듯, 암호화폐에 대한 끝없는 믿음은 투자자들 특히 개미들을 쪽박으로 인도할 수 있다.

앞으로 이전과 같은 폭등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 정부가 암호 화폐 거래 실명제를, 러시아 금융당국이 암호화폐를 돈이 아닌 블록체인의 결제수단으로 보고 세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하는 등 곳곳에서 각종 규제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락세 이후 찾아올 반등을 기다리는 ‘존버’와 조금이라도 손실을 줄이기 위한 ‘손절매’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암호화폐 투자자들 모두에게 좋은 결실이 맺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최희은/뉴욕지사 경제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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