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무십일홍, 권불십년

2018-01-31 (수)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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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 시절 국회의장을 지낸 정의화 씨는 그의 회고록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측근에 쓴 소리하는 참모를 두었더라면 탄핵이라는 오늘의 불명예를 뒤집어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친박들이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고 대통령만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이 모양 이 이 꼴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실은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를 맡았던 유영하 변호사의 엊그제 인터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은 국정원, 민정수석 등으로부터 최순실 씨에 대한 보고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하면서 “박 전 대통령은 왜 아무도 최 씨에 대해 보고하지 않았는지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말 참모들이 최순실에 대해 바른 소리를 하지 않아 오늘의 비극을 맞이하게 된 것일까. 비서실장과 국정원장도 그를 단독면담하기 힘들었다. ‘박근혜’라는 단어는 불통의 상징이었다. 참모들조차 그가 주요 현안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 누구와 상의하는지 모른다고 회고하고 있다. 오죽하면 한때 참모였던 김덕룡은 박근혜를 먹통이라고까지 불렀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결정적인 단점은 반성할 줄 모른다는 점이다. 자신이 초래한 불행인데 아직까지 아랫사람 탓만 하고 국민들에게 사죄 한마디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신세도 지금 풍전등화다. 올림픽 후 검찰에 소환되어 망신을 당하는 것은 거의 틀림없는 것 같다. 측근들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불법행위를 터트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MB(이명박)의 분신이라고까지 불리던 김희중 전 청와대 부속실장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다 진술해 퍼스트 레이디였던 김윤옥 여사가 해외여행에서 무슨 돈으로 명품쇼핑을 했는지까지 다 털어 놓았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의 공신인 정두언 전 의원은 “경천동지할 3가지 사건이 MB 선거과정에서 있었다”고 폭탄선언을 할 정도다. ‘이명박의 최측근’으로 불리던 이들은 왜 MB에게 등을 돌렸을까.

정두언은 이명박 대통령의 ‘영포라인’중용에 이의를 제기하다 버려졌고 김희중은 뇌물사건으로 옥살이 할 때 부인이 쇼크로 자살했는데도 MB가 위로의 말 한마디 없었고 최시중 등은 사면해주면서 자신은 제외된 것에 한을 품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두언의 말을 빌리면 MB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스타일의 지도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위기에 처해 있는데도 그를 구하려고 나서는 참모들이 없다고 했다.

박근혜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불행은 결국 소통의 실패와 편견인사가 원인이라는 것이 다시 한번 확인되고 있다. 탄핵투표 때 새누리당의 비박의원 30여명이 찬표를 던지지 않았더라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감옥에 가는 신세는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최경환 의원을 시켜 ‘진박 감별사’ 작업을 편 것이 불씨가 되어 새누리당이 반 조각이 나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에 살아있는 대통령은 모두 4명이다, 그중 2명은 이미 감옥에 갔다 왔고 한사람은 옥고를 치르고 있고 나머지 한사람은 일보직전이다. 한국인 모두가 부끄러워해야 할 정치풍토다. 대통령마다 현직을 떠난 후 ‘박수 받는 대통령’이 되기를 원했지만 박수커녕 감옥 가는 대통령이 되어 버렸으니 이만저만 희극이 아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만사 “민주적”을 외치면서 대통령 자신은 너무나 비민주적인 자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어제의 실세인 최경환 의원이 옥살이를 하고 ‘만사형통’으로 불리던 MB의 친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 들것에 실려 검찰조사를 받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 꽃은 열흘 붉은 것이 없고, 권력은 10년 넘지 못한다)이 한국정치의 상징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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