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불쌍한 두 마리 새

2018-01-16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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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의 국민성 중 가장 큰 특징의 하나는 느린 것을 못 참는 것이다. 미국에서 한인들 별명이 ‘빨리 빨리 피플’이고 한국의 인터넷 스피드가 세계 1위인 것은 이런 국민성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 몇 달 간 한국을 다녀온 사람은 급속한 변화 하나를 경험했을 것이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의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주문을 받는 직원들이 사라졌다. 그 대신 매장 한 가운데 사람 키보다 큰 주문대들이 떡 들어서 있다. 화면을 꾹꾹 눌러 주문을 하고 카드로 결제를 한 후 번호표를 뽑아 기다리면 음식이 나올 때 직원들이 번호를 불러준다.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올해부터 최저 임금이 6,470원에서 7,530원으로 16% 인상됐기 때문이다. 요식업계 뿐만 아니다. 서울 아파트 단지에서는 수십 명의 경비원들을 내보낸 후 무인 카메라로 대체하고 있고 편의점 알바생들을 감원하거나 근로 시간을 줄이는 곳이 크게 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고용 노동부가 운영하는 취업 정보 사이트 ‘워크넷’에 따르면 작년 12월 기업들의 신규 구인 인원은 20만 8,000명으로 전년에 비해 4만3,000명이 감소했다. 2015년과 2016년 구인 인원이 계속 늘던 것과 대조적이다.

최저 임금법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들은 저임에 시달리는 알바생과 이들을 고용하고 있는 영세 업주들이다. 많은 업주들은 한 달 열심히 일해도 최저 임금보다 조금 많은 돈을 가져간다. 이런 상황에서는 돈을 더 줄래야 줄 수가 없다.

정부에서는 이들을 위해 3조원의 지원금을 책정해 놓고 있으나 이를 이용하는 업주는 거의 없다. 이를 타기 위해서 직원들을 의료, 상해, 국민연금, 실업 보험 등 4대 보험을 들어주어야 하는데다 가입 절차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30명 미만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사업장 300만개 중 79%인 236만 명이 신청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9일 현재 신청자는 1,000명을 밑돌고 있다.

이런 부작용에도 불구 정부는 이를 강력히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문재인은 “최저 임금 인상은 극심한 소득 불평등 해소와 저임금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막상 이 제도의 영향을 직접 받는 근로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는 최저 임금 인상으로 해고됐다는 근로자 수백명이 급격한 인상을 중단해 달라는 글을 올려놓고 있다.

이 중 한 명은 최저 임금이 오르면서 “상여금 없애기 바쁘고 직원 잘라내기 바쁘고 잔업 특근 다 없애버리기 바쁘다”며 “2018년 임금이 올라서 행복하고 살만한 게 아니라 물가는 물가대로 올라가고 임금은 2017년보다 못한 임금을 받아야 할 상황”이라고 딱한 심정을 토로했다.

또 다른 직원은 “생산직이라 연장 근무 시간으로 먹고 사는데 시간제한으로 작년보다 월급이 백만원 가까이 줄었다. 물가도 올라가고 아이들은 커 가는데 어찌 생활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썼다.


한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40%가 최저 임금 인상으로 알바생을 줄이겠다고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어수봉 최저 임금 위원장마저 최저 임금 1만원 공약을 파기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지금도 16조원의 인건비 추가 부담이 예상되는데 1만원이 되면 81조의 돈이 더 들어간다는 것이다.

한국의 남성 자영업자 비중은 전 국민의 26%로 경제협력 개발기구(OECD) 39개국 중 세 번째로 높다. 이들과 이들이 고용하고 있는 알바생들이 이번 무리한 최저 임금 인상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사회적 약자를 돕겠다는 취지로 시행되고 있는 최저 임금 인상으로 사회적 약자인 이들 두 마리 새가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일석이조도 이런 일석이조가 없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한인이 살고 있는 LA도 올 7월이 되면 최저 임금이 현 12달러에서 13달러 25센트로 오르게 된다. 지금도 힘든데 그 때가 되면 어떻게 하느냐는 자영업자들의 한숨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이번 한국의 최저 임금 인상 소동은 최저 임금 인상이 고용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 분명히 보여줬다. 앞으로도 이런 주장을 되풀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눈이 멀었거나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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