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아들의 방과 손님
2018-01-12 (금) 12:00:00
양안나(버클리문학회원)
아들이 부모의 따뜻한 둥지를 떠나 기숙사로 떠나던 날 눈물이 먼저 인사를 했다. 침대 세트와 옷가지, 백팩 등 당장 필요한 물건을 거실 한쪽에 두고 남편은 “네가 지금은 이렇게 아주 작은 짐으로 시작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것의 몇 배가 되어 오늘을 기억할 거야”라며 짐꾸러미와 아들에게 셔터를 눌렀다. 기숙사에 아들을 내려주고 돌아온 나는 다음 날까지 빈방을 열어보지 못했다.
아들은 집과 가까운 곳에 있는 대학을 졸업한 후 이제는 좀 더 먼 곳에서 혼자 생활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제법 구색을 갖추어 놓고 공부를 계속하는 중이다. 비워둔 아들의 조그만 방은 다양한 손님들이 사용하곤 한다. 작년에는 조카네 세 식구가 직장 포상휴가로 와서 서부여행의 처음과 끝을 이 방에서 보냈었다. 한국에서 발행된 기가 막히게 상세한 여행정보지와 네비게이션에 의존해서 처음 온 미국 여행을 직접 렌터카를 몰며 그랜드캐년 등 가족여행을 즐기다 갔다.
동부에서 온 지인도 늦게 얻은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이 방에서 하루를 자고 갔다. 그는 서울에서의 우리 결혼식 피로연에서 사회를 보며 짓궂게 선배를 골탕 먹이던 동생이었다. 신랑의 두 발을 넥타이로 묶은 후 묻는 말에 즉각 대답하지 않으면 양말을 벗긴 발바닥을 이쑤시개로 사정없이 찌르는 등 좌중을 유쾌하게 만들었던 그는 답가로 긴 각설이 타령을 구성지게 뿜어냈었다.
올해 첫 사용자는 며칠 후 이 부근의 학회가 끝난 다음 나와 함께 하룻밤을 보내기로 약속한 동생이다. 벌써 50줄에 들어선 여교수이지만, 내 눈엔 아직도 그 옛날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흘러내린 앞머리를 입으로 후후 불며 속내를 털어놓던 눈이 맑았던 대학생으로 보인다. 친자매처럼 일 년 만에 만나도 정이 푹 익어 같은 공간에서 오랫동안 지내온 듯하다.
방이 조그마해도 침대가 낡아도 우리가 있기에 살갑게 찾아와 주는 이들이 좋다. 이들은 우리 부부의 연애 시절에도 함께 어울렸던 재주꾼들이다. 저녁을 먹은 후 밤이 깊어도 돌아갈 걱정 없이 편안하게 앉아서 얘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는 삼사십 년 전의 시절로 이미 들어가 있었다.
연휴 동안 머문 아들의 온기가 남은 침대를 정리하며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환기를 시킨다. 책상과 책에도 이십 대 아들의 냄새가 배어 있다. 벽에 걸려 있는 아들 사진이 손님을 환영하듯이 환하게 웃고 있다. 아들아,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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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안나(버클리문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