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이별

2017-12-29 (금) 12:00:00 양안나 (버클리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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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사랑하는 법이 다르듯이 헤어지는 방법 또한 다르다. 평생 수많은 것들과 만나 사랑하고 이별을 하며 살아간다. 어느 날 여행지에서 구입한 아끼던 커피잔을 떨어트려 못쓰게 되면 그 잔에 담았던 이야기가 사라지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정을 나누며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은 끝나지 않는 이야기와 그리움이 남는다.

주말에 노희경 작가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란 4부작 드라마를 혼자서 보며 티슈를 연신 뽑았다.

일생을 가족들만 뒤치다꺼리하다 자신은 아파할 시간도 없었던 한 여인이 난소암 말기로 한 두 달밖에 살 수 없다는 판정을 받는다. 끝까지 자신은 아픈 곳이 없는데 오진일 것이다고 주장을 한다. 드디어 어느 날 밤, 너무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며 가족을 부둥켜안고 울부짖는다. 나는 티슈가 더 필요했다. 한 여자의 애달픈 삶과 죽음 앞에 그들은 그녀에게 받은 빚을 되돌려줄 수 없음을 안타까워 한다. 가족 한 명 한 명에게 남기는 마지막 말은 서로가 평상시에 하지 못한 말, 사랑했다는 것이었다.


1년 전 대모님과 단둘이 점심을 하기로 약속을 했다. 대모님은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드시곤 하셨다. 약속 시간보다 10분 전에 도착하시던 분이 몇 시간을 기다려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나는 불안하여 연락을 할 수 있는 곳은 다해 보았지만 알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약속한 바로 전날 밤부터 심장마비로 병원에 계신다는 연락을 받았다. 내가 상을 차려놓고 무한정 기다리던 시각에 당신이 70년 이상 사랑했던 모든 것과 고별을 시작하고 계셨다. 사흘 전에 만남을 약속하고 헤어진 것이 영영 이별의 시간이 될 줄은 몰랐다.

장례미사를 집전하는 성당 입구에 마련된 고인의 젊은 날 아름다웠던 생애를 사진으로 다시 되돌아보았다. 결혼 사진에서 수줍은 듯 조용히 웃던 모습을 마지막까지 지니다 가셨다. 서울에서 교직 생활을 하시다 20대 말에 미국을 오셔서 참 곱게 사시다 가신 분이셨다. 늦가을 하늘은 그린듯이 푸르렀고 긴 여정의 마지막 길에 올려드린 꽃들은 너무 아름다워 처연했다.

지난 한 해도 몇 번의 이별을 하고 또 잊고 지내던 추모식이 몇 번 있었다. 이별을 눈물로 답하는 대신 사랑과그리움을 마음 속에 간직한 채 우린 또 묵묵히 살아간다. 세월은 흘러도 오랫동안 그리움은 남는다. 다음 해에는 슬픈 이별의 소식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양안나 (버클리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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