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팔순 상원의원의 6선 도전

2017-10-19 (목) 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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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연방 상원의원의 6선 도전 선언으로 캘리포니아 정계가 요즘 시끌시끌하다. 84세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의 은퇴 발표를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려온 젊은 진보파들의 불만과 좌절이 폭발하면서 그동안 물밑에서 부글대던 찬반논쟁이 수면 위로 치솟은 것이다.

“총기폭력 중단, 기후변화 투쟁, 헬스케어 접근 등 할 일이 많다”면서 재출마 전력투구를 천명한 지난 주 파인스타인의 발표는 그동안 무성했던 추측은 잠재웠지만 앞으로 1년여 치열하게 전개될 찬반논쟁의 신호탄이 되었다.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나이’와 중도파 파인스타인에 정면으로 맞서는 진보파들의 이념투쟁이다.


젊은 민주당 정치인들이 원로들로 막혀버린 정체현상에 애를 태워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파인스타인을 비롯해 79세 제리 브라운 주지사, 77세 낸시 펠로시 연방하원 민주대표, 75세 바바라 박서 상원의원 등 고령의 리더들이 20여년 권좌에 머물러 온 캘리포니아에서 더욱 그렇다. 여성 진출을 가로막는 유리천장 못지않은 ‘실버 천장’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그러다 지난해 박서의 불출마로 24년 만에 ‘기회의 문’이 열리면서 뉴페이스 카말라 해리스가 전국무대에 데뷔했고, 브라운도 내년엔 임기제한으로 물러나며 하원에선 이미 “새 세대에 횃불을 넘겨줄 때”라면서 펠로시 퇴진 촉구가 가시화되었다. 그런데 가장 나이 많은 파인스타인의 은퇴에 대한 ‘당연한’ 기대가 물거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나이는 사실상의 쟁점이면서도 상당히 조심스럽게 접근되고 있다. “젊은 세대에 길을 터주어야 한다” “민주당도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정도에서 그치고 있다. 하긴 도전자가 파인스타인의 나이를 타겟으로 삼는다면 역풍 맞을 위험이 다분하다. 더구나 여성, 유색인종, 동성애자 등 특정집단 차별 반대에 앞장서온 민주당 진보파의 연령차별 시사는 명분이 서지 않는다.

팔순의 현역 연방의원은 파인스타인 외에도 공화당의 척 그래슬리와 오린 해치 등 7명이나 더 있다. 85세의 클로드 페퍼 하원의원은 1986년 미국의 정년제 폐지법안 통과를 이끌었으며 공화당 상원의원 스트롬 서먼드는 100세에 은퇴했다.

65세 이상 미국인의 19%가 여전히 일하고 있다. 노인 근로자는 미 노동력에서 가장 급 성장률을 보이는 그룹이다. 의회에 소수계나 여성들의 권익을 가장 잘 대변해줄 소수계와 여성 의원들이 필요하다면 점점 늘어가는 고령자들의 권익을 대변해줄 고령 의원들의 설자리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반문도 나오고 있다.

‘나이’에 비해 훨씬 강력하게 제기되는 이슈가 파인스타인의 중도성향에 대한 비판이다. 버니 샌더스 돌풍이후 확연해진 민주당내 급진 리버럴의 상승세가 그 원동력이다.

파인스타인은 ‘초당적 교량역할’을 자처하는 상원 민주당의 대표적 중도파다. 총기 폭력, 여성 차별, 민권과 낙태권 보호 등에선 전통적 진보노선을 고수해 왔으나 안보 매파이며 자유무역과 사형제를 지지하는 보수성향으로 당론과 맞서는 것도 개의치 않아 왔다. 리버럴 진영이 강력 추진하는 정부주도의 싱글-페이어 의료보험에도 반대한다.


“무늬만 민주당(Democrat In Name Only)인 다이앤은 은퇴하라”는 시위대의 구호가 터져 나오는가 하면 그는 “빠르게 변화하는 캘리포니아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특히 지난 8월 한 모임에서 “배우고 변하기만 한다면 트럼프도 좋은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발언한 뒤 진보파로부터 호된 비난을 받고 있다. 한 리버럴 해설가는 “전국에서 가장 친 트럼프인 블루 스테이트의 민주당 정치인을 패배시키자”고 트윗하기도 했다.

반 트럼프 저항운동의 본거지로 자부하는 캘리포니아 주민들의 성향도 진보화의 경향이 뚜렷하다. 민주당 대상 PPIC 여론조사에서 자신이 ‘리버럴’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2011년 52%에서 최근 61%로 늘어났다.

이처럼 세대적·이념적 변화의 물결이 거세게 느껴지긴 하지만 캘리포니아의 정치는 아직 파인스타인에 유리하다. 그가 내년 선거에서 막강한 선두주자가 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승리의 요소인 자금력과 지명도에서 도전자가 누구이든지 간에 월등하게 앞서 출발할 것이다. 표밭의 지지율도 54%로 높다. 캘리포니아 유권자의 62%를 차지하는 여성표밭의 성원도 탄탄하며 샌프란시스코 시장 출신으로 북가주에서 절대적 지지를 확보하고 있는 한편 지난 5차례 선거 중 LA카운티에서도 패한 적이 없다.

파인스타인의 출마 결정과 함께 그동안 예비후보로 거론되었던 민주당 젊은 정치인들이 줄줄이 공개지지를 선언하며 몸을 낮추는 와중에서 한 리버럴 스타가 도전을 선언했다. 첫 히스패닉계 주 상원의장 케빈 드레온(50)이다. ‘활기차고, 공격적이면서, 논리정연하며 카리스마를 갖춘’ 그의 최대 강점은 가난한 이민자 청소부 싱글맘의 아들에서 역경을 딛고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라이프 스토리다. 그러나 낮은 지명도와 약한 자금력이라는 결정적 약점의 극복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내년 상원선거는 캘리포니아 민주당 내 진보파의 영향력을 측정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목소리 높은 젊은 진보파들이 외치는 ‘신선한 새 바람’이 휘몰아칠지, 파인스타인이 강조하는 경륜 풍부한 ‘안정된 리더십’이 저력을 발휘할지…흥미로운 선거가 될 것이다.

결정은 유권자의 몫이다. 한인들의 한표도 결과를 좌우할 수 있다. 그러려면 먼저 파인스타인과 도전자들의 자질 및 정책에 대해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예선은 내년 6월5일이다. 아직 공부할 시간이 충분하다.

<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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