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왜?”

2017-10-10 (화) 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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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일 밤 라스베가스 스트립 야외공연장에서 음악축제를 즐기던 사람들은 느닷없이 빗발처럼 쏟아지는 총탄 세례를 받았다. 순식간에 59명이 사망하고 5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콘서트장 맞은 편 만달레이베이 호텔 32층에서 2만여명의 군중을 내려다보며 무차별 발사를 한 범인은 스티븐 패덕, 범인의 총격 난사 이유가 오리무중이다. 회계사란 직업으로 유복하게 살았고 64세 나이에 돈도, 시간도 있으니 여유 있게 은퇴생활을 즐겨도 될 터인데 그는 왜 이 무고한 사람들을 죽여서 함께 저승으로 끌고 갔을까?

경찰은 그의 아버지가 1960년대 은행강도 혐의로 체포되어 20년형을 살다가 1969년 텍사스 연방교도소를 탈출하여 위장신분으로 살던 중 1978년 체포되었고 1998년 병사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아버지가 FBI 지명수배자로 포스터가 여기저기 나붙었을 때 스티븐 패덕은 10대 청소년이었다는데 당시에는 문제가 없다가 청년기, 장년기 멀쩡히 다 보내고 60대 중반에 이런 대형 참사를 일으키다니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결손가정에서 자란 스티븐 패덕이 결혼 6년 만에 이혼하면서 27년간 결혼하지 않고 혼자 혹은 여자 친구와 동거하면서 내내 심리적 불안과 내재적인 분노를 꾹꾹 참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아버지처럼 폭력적이고 이상심리를 계속 감추고 살다가 노년에 들어서 더 이상 세상 살 재미가 없어 죽자니 혼자서는 왠지 억울해서 물귀신처럼 다른 사람들을 함께 죽여 세상에 복수하겠다는 것인가.


이러한 심리는 사이코패스(Psychopath)에 해당되는 것 같다. 사이코패스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로 불특정 다수 무차별 공격시 예방, 치료, 대비책이 없다고 한다. 범죄심리 전문가에 의하면 사이코패스의 정신적 결함이 연쇄살인으로 나타나기까지 10~20년이 걸리는데 전조증상이 대부분 청소년기에 나타난다. 이 시기에 정신감정을 강화하고 적극 치유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

미국은 1980년대 이후 전통가치 붕괴, 가정해체, 청소년 일탈행동의 증가로 미국사회는 전통적 인성, 덕목교육이 재등장했다. 1993년 인격발달을 미국 교육의 최우선 목표로 설정한 전미조직 ‘인성교육협회’가 결성되고 대부분의 학교는 인격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지금은 자원봉사가 생활화된 미국이라고는 하나 이렇게 총기사고가 한번 나면 미국의 인성교육 허점이 펑펑 드러난다. 아무래도 패덕은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고 더불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이 한참 모자라 보인다.

미국에서는 매년 4,000개의 미국교회가 문을 닫고 있고 매일 3,500명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가정에서도 성인이 되면 조부모, 부모를 떠나 혼자 살다 보니 도덕적 규범과 윤리적 가치(보살핌, 정직, 공정, 책임감)를 배울 기회는 점점 없어지고 있다.

최근 앨라배마대 ‘사회 감정 교육신경과학연구실’의 한혜민 교수팀의 논문이 흥미를 끌었다. 도덕적 모범으로 널리 칭송되는 유명한 위인들 이야기보다 가족, 친구, 교사 등 주변사람의 평범한 미담이 도덕교육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다. 이 논문은 국제학술지 ‘프론티어 인 사이콜로지’(2017년 2월14일자)에 실렸다.

마틴 루터 킹 목사나 테레사 수녀 등 위인의 전기보다 주변 인물의 기부나 자원봉사 등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학생들이 도덕적인 측면에서 더 고무됐고 배운 내용을 실천하려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훌륭한 위인은 너무 먼 당신이라 내 주위의 형, 선생님이 하는 일은 나도 할 수 있어 하는 의욕이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좋은 일 하고, 원칙과 도리에 따라 산다면, 더 나아가 미담의 주인공이 된다면 주위의 본보기가 되겠다. 범죄가 줄어든 세상도 결국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

<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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