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리조나 사막

2017-10-06 (금) 장금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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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사막 여기저기 자슈아 선인장이 무언가 잡으려는 듯 팔을 펼치고 서 있다. 태양은 불 거품을 토하며 달려들고 어디에도 발 부칠 곳 없이 달리고 달려도 그 자리였던 곳으로 아직까지 생생하다.

얼마 전 신문기사를 보니 멕시코 국경을 넘어온 트레일러 속에서 10명이 사망하고 17명이 중태이며 30명이 부상당했다고 한다.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35번 고속도로변 월마트 앞에 주차한 트레일러에서 생존자가 물을 달라고 외치는 바람에 이 불법 트레일러는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차량 내 온도가 173도였다니 요 며칠 전 100도에서도 헉헉 대며 에어컨 앞으로 모여든 우리로서는 그들의 고통이 가히 짐작이 간다.

몇 년 전 애리조나 사막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는데 국경을 넘는 불법인들의 생존을 위해 설치된 급수조가 간혹 눈에 띄었고 여기저기 낱개 물병도 보였다. 사람의 왕래가 없는 곳에 누가 물병을 떨어뜨리고 갔을까 하는 의문에, 애리조나 인권단체에서 일부러 뿌려놓고 간다는 대답이었다.


휴메인 보더스라는 이 단체는 불법입국자들의 생존을 위해 급수시설 8곳을 설치했는데 누군가가 6곳을 파괴해 물을 없애고 대신 코요테 시신을 거기에 두어 끔찍한 공포를 느끼게 했다. 불법이민자들을 증오하는 사람들의 소행이다. 그래서 물병을 뿌려 놓는다는 것이다. 불법 입국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인간의 존엄한 생명윤리를 먼저 생각하며 일하는 그들에게 존경을 보낸다.

매년 그 지역에서만 100여명의 밀입국자가 국경을 넘어오다 허기와 탈수로 사망한다 하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목숨을 건 모험 끝에 들어와서 과연 그들은 만족한 일자리와 원하는 돈을 벌고 있을까. 더욱이 트럼프가 집권하고 나서는 날마다 체포와 추방 위협에 시달리며 전전긍긍하고 있으니 삶이 얼마나 고달플까. 간혹 돈을 벌어 자기 나라로 돌아가, 자그마한 가게도 차리는 성공한 사람도 보았지만 대개는 영원한 방랑자로 떠도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2003년 1월 20일 이민 100주년 기념식이 프레즈노 리들리에서 열려 사회를 보러간 적이 있었는데 다뉴바와 리들리 공동묘지에 이름 없이 묻힌 이민1세들의 묘를 보고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김씨 이씨 등으로 한줌 자리한 그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은 미국 곳곳에 대법원장으로, 저명한 교수로, 기업가로, 운동선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장금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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