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굴욕을 참는 일만 남았다

2017-08-16 (수)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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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신문에 두 개의 대조적인 사진이 실렸다. 하나는 보름동안 얼굴을 안보이던 북한의 김정은이 전략사령부를 시찰하며 김락겸 사령관으로부터 브리핑을 받는 장면이다. 다른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배우 송강호와 함께 영화 ‘택시 운전사’를 보며 눈물을 닦는 장면이다. 전쟁 위기설이 떠도는 8월에 남북이 어떤 자세로 현 시국을 맞이하고 있는지 한눈에 분위기를 알아볼 수 있는 사진이다.

미국이 정말 북한을 선제공격할까. 조지프 던퍼드 미 합참의장이 엊그제 서울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태도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 그는 미국이 선제공격을 검토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제재를 통한 외교·경제적 압박 강화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근본 기조다. 군사적 차원 논의는 이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은 현 위기 상황의 평화적 해결을 모색 중이라는 것이다. 트럼프의 ‘화염과 분노’ 운운 발언은 김정은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협박용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미국이 정말 북한과 전쟁을 벌일 준비를 하고 있는가의 여부는 주한 미국시민들에 대해 소개령이 내려지는가 안내려지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22만명의 미국시민을 피난시키지 않고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벌인다? 그건 트럼프대통령이 스스로 탄핵소추감이 되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같은 미국의 속셈을 파악하고 미국과 북한의 공갈협박게임에 침묵을 지켜온 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다가 오늘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드디어 한반도 긴장상태에 대한 자신이 생각을 털어 놓았다. “한반도에서 또 다시 전쟁은 안 됩니다.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정부는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을 것입니다”라고 밝힌 것이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문재인 노선’을 분명히 한 셈이다. 특히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는 표현은 트럼프의 강경일변도 자세에 대한 경고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한미동맹관계도 시험대에 올려지는 셈이다. 현 정부는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을 것이다. 어떤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북핵 문제는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광복절 담화에는 ‘평화’라는 단어가 20번이나 담겨져 있다. 심지어 문 대통령 주변에서는 우선 한·미 합동 군사훈련부터 중지하자는 주장까지 펴고 있다. 문정인 대통령 특보가 ‘핵 동결 조건부로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축소하는 문제를 검토하자’고 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북의 핵과 미사일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소리도 여권에서 튀어나오고 있다. 현 정부의 속셈을 다 드러냈으니 북한이 한국을 우습게보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얼마 전 전북 무주에서 열린 세계 태권도대회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달려가 북한의 장웅 IOC(국제올림픽위원회)위원에게 평창 겨울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이 참여하는 문제를 공개 제안 했을 때 그가 보인 오만한 반응이 이를 증명한다. “북남 관계를 체육으로서 푼다는 건 천진난만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북한은 한반도 문제 해결을 미국과 직접 담판 지으려 하고 있다. 한국은 끼워주지도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담화에서 평화를 외치고 있지만 이 평화의 대가는 한국에 수많은 굴욕을 안겨다 줄 것이다. 북한에 질질 끌려 다니며 평화를 애걸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재의 한국의 비참한 신세다. 굴욕을 참는 일만 남았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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