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봄과 여름이야기

2017-07-22 (토) 12:00:00 장은주(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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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기다리며 살던 아이가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였다고 한다. 겨울에 독일에 가신 엄마, 아빠를 무척 기다렸다 한다. 그 해에는 특히 기다려졌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 봄에 집 앞 거리에 핀 벚꽃들이 너무 예뻐서 부모님이 꼭 보실 수 있기를 원했기 때문이라 한다. 이 꽃들이 다 떨어져 버리기 전에 돌아오셔서 함께 벚꽃을 보고 싶었다 한다. 문방구에 있는 풀을 다 가져다가 꽃들을 나무에 다 붙여놓고 싶었다 한다.

그런데 벚꽃은 다 지고 그해 봄 어머니는 돌아오시지 않으셨다 한다.....

부모님의 헤어짐을 뜻밖에 경험하고 아이의 마음은 얼마나 무너졌을까. 참으로 이혼이란 것은 시간이 이렇게 흐른 후에도 가슴을 사무치게 하는 것인 것 같다. 마음을 저리게 하는 것이다. 이혼하지 않고 살면서 함께 고통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가족을 위해 많은 여인들은 자신의 삶에 자기를 버렸다. 하지만 그런 여인이 되기를 포기한 삶 속에서도 결국 자기를 버려야 했던 것을. 덩그러니 혼자 남아 자신을 추스르기조차 힘든 시간들 속에서,...


아이의 기억 속에선 아직 부모님이 오시지 않았는데, 벚꽃은 무심히 떨어지고, 이곳 꽃밭에선 다알리아 꽃이 뚝 뚝 소리를 내면서 큰 꽃잎을 떨어뜨리며 울고 있다. 올해 초봄에 저 다알리아를 심고선, 싹이 트고 잎이 자라 꽃봉오리 맺히고 꽃이 피기를 나는 몇 달을 기다렸던가, 그런데 나는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다알리아를 옮겨 심었다.

시들어 가는 다알리아를 보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아프게 한 내 삶을 보았다. 그 아이와 나는 지금도 멀리 떨어져 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 아이의 과거 속으로 돌아가서 벚꽃나무 아래서 만나고 싶다. 꽃이 질까 걱정하며 서성이는 아이를 안아주고 싶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

다알리아 꽃들도 이제 곧 질 것이다. 하지만 옮겨진 뿌리는 땅 속에서 회복될 것이다, 틀림없이, 그 사실은 나에게 큰 위로이면서 희망이다. 내년이 되면 나는 다알리아를 다시 볼 것이다. 의심없이 받아들여지는 재회, 그 아이와 나에게도 그럴 것이다.

<장은주(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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