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가지 않은 길

2017-07-20 (목) 12:00:00 그레이스 홍(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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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평생 처음으로 예술이 주는 감동에 전율을 느낀 게 발레 공연이었다. 무대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음악에 몸을 맡기고 고운 선을 그리며 날아갈 듯 몸으로 표현하는 발레는 최고의 아름다움이었다.

발레리나가 되겠다고 결심했지만,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로 포기했었다. 잠재된 꿈틀거림은 대학 때 탈춤 동아리로 활동하면서 아쉬움을 풀어냈다.

두 번째 꿈은 그림이었다. 미술 시간이면 잘해야겠다는 욕심으로 스트레스를 무척 받았다. 그 기억을 지우고 싶어서 대학 때 미술 학원에 다녔었다.


난 뭐든지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에 집착하는 습관이 있다는 것과 표현에 창의성을 부여해야 하는데 나의 머리는 상상력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하지만 그림과는 친해 보고자 계속 관심을 두고 있다. 미술사를 공부한 딸의 설명을 들으며 샌프란시스코 박물관에 가서 작품 감상도 하고 갈 때마다 전시 관련 엽서와 책도 사고 냉장고 마그네틱도 산다.

화가가 느꼈을 스쳐 지나가는 섬광 같은 이미지와 상념들, 그림 안에 신비하게 가려져 있는 아름다움을 깊이 느낄 수 있는 안목을 얻기 위해 그림을 설명한 책을 최근에 두 권이나 읽었건만 화가의 질곡 된 인생사는 확연히 기억나는데 그림에 대한 건 생각이 안 나니, 그림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삶은 매 순간 선택이다. 운전 중 노란 불을 마주쳤을 때, 그냥 빨리 지나쳐야 할지 바로 서야 할지 순간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것도 있고, 오랜 시간 선택에 고민해야 하는 것도 있다. 아이들의 진로 결정이나, 노후준비를 결정하기까지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하고자 하는 노력과 열정만 있으면 다 이룰 것 같이 말하지만, 그건 운이 좋게 성공한 자의 목소리일 뿐이다. 꿈꿨던 대로 삶을 펼치며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사람이 이 나이에 꾸는 꿈이란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환상이고 혼자 즐기는 소박한 일탈이다.

일상에 마모되어 버렸던 꿈에 대해 계속된 관심을 둔다면, 전문가적인 지식을 쌓을 수 있고, 생활에 활기를 넣어 나만의 행복감을 얻을 수도 있다.

살다 보면 아쉬움은 항상 남는다. 두 갈래 길 앞에서 한 길로 들어서는 순간 되돌아올 수는 없다. 내가 걸어온 길 보다는 걷지 않았던 길에 대한 미련은 누구에게나 있다. 두 길을 함께 걸을 수는 없기에…

<그레이스 홍(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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