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벼랑에 선 트럼프케어…다음은?

2017-07-13 (목) 12:00:00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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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 매코널 연방상원 공화당 대표가 지난달 말 트럼프케어 상원안을 공개 1주 만에 표결에 부쳐 속전속결로 통과시키려던 이유 중 하나는 장외 반대에 대한 우려였다. 논의 기간이 길어지면 반발하는 의원들을 설득할 시간도 벌게 되지만 한편으론 반대투쟁이 전국으로 확산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려는 적중했다. 지난 한 주 공화당 상원의원들의 독립기념일 휴회는 편안하지 못했다. 트럼프케어 반대로 타운홀 미팅은 뜨겁게 들끓었고, 거리와 의원들의 지역구 사무실은 시위대로 넘쳐났다. 매년 독립기념일 퍼레이드에서 활짝 웃으며 앞장섰던 정치가들을 금년엔 얼굴조차 보기 힘들었다.

‘용감하게’ 행사에 참가한 공화의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중 한 명이 캔자스 주의 제리 모란 상원의원이었다. ‘레드 중의 레드 스테이트’로 꼽히는 캔자스는 작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73% 득표로 압승을 거둔 공화당 텃밭의 하나다. 트럼프케어 지지자가 단 한 명도 없었던 지난주 캔자스의 타운홀에서 모란은 분노하는 성난 주민들의 항의에 진땀을 흘렸다.


독립기념일 퍼레이드에 참가한 메인 주의 수전 콜린스 의원에겐 무보험자로 추락할까 두려워하는 주민들의 하소연이 쏟아졌다. 트럼프케어의 메디케이드 대폭 삭감을 반대하는 중도파인 그에게 감사하며 주민들은 당부했다 : “땡큐 수전, 계속 강하게 버티어 주세요”

지역구민들의 불안과 분노를 체감하고 이번 주 초 의회로 돌아온 의원들을 맞은 것은 트럼프케어 반대 시위대였다. 일부 의원들의 사무실 안팎을 점령하고 농성하다 월요일 하루에만 80명이 체포되는 등 격렬했던 시위는 때마침 터진 트럼프 아들의 러시아 스캔들 ‘폭탄’에 덮여버렸으나 이들의 절박한 요구와 끈질긴 저항을 외면하기는 이제 힘들어졌다.

“(트럼프케어) 법안을 죽이고 우리 생명을 구해 달라”는 구호를 외치며 한 시위자는 말했다 : “여러분이 메디케이드를 잘라내면 여러분은 내 생명을 잘라내는 것입니다. 세 번이나 암과 싸워 살아남은 내가 이제 정치적 탐욕 때문에 죽게 되었습니다…”

트럼프케어의 정치적 환경은 연휴 전보다 조금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공화당 내 강경보수파와 중도파의 각기 다른 이유에 의한 반대로 7월초 연휴 전에서 7월 중순 연휴 뒤로 연기된 트럼프케어 표결의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 강경파와 중도파의 차이는 더욱 벌어졌고, 이들을 설득할 시간은 더 촉박해졌으며, 캔자스의 모란까지 더해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의원은 10명으로 늘어났다. (3명만 반대표를 던지면 트럼프케어는 무산된다)

공화당 지도부는, 다시 전속력으로 달리는 트럼프케어 처리 일정을 마련했다. 반대자들의 주장을 고려한 수정안을 오늘 공개하고, 다음 주 월요일에 의회예산국(CBO)에서 수정안에 대한 분석평가가 나오면 다음 주 후반 표결에 부칠 방침이다.

그러나 엊그제 공화의원 오찬에서 소개된 수정안의 개요에 만족한 의원들은 별로 없는 듯하다. 원안에서 전면 폐지했던 부유층 증세를 일부 유지시켜 세수도 확보하고 ‘부자 감세, 저소득층 혜택 감축’이라는 시각을 완화시키려 했으며, 오하이오와 웨스트버지니아 의원들의 반대이유인 마약성 진통제 중독치료 기금도 보강시켰으나, 메디케이드 대폭 삭감에 대한 조정은 별로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경파의 대표주자 랜드 폴 의원은 “오바마케어 폐지가 아니다”라고 반대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으며, “내 지지를 얻으려면 완전 재정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는 콜린스 의원과 함께 중도파인 리사 머코우스키 의원도 “내가 우려했던 부분엔 어떤 변경도 없었다”고 말한다.


시간도 공화당 지도부의 편이 아니다. 헬스케어 지연으로 세제개혁부터 부채상한선 증액, 내년회기 잠정예산까지 주요 어젠다가 줄줄이 밀린다면 공화당 천하의 정부는 자칫 기능마비에 빠질 수도 있다. 다급해진 매코널이 여름 휴회를 2주 축소해 이번엔 휴회 전 헬스케어를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으나 효과는 미지수다.

여기에 더해 “상원안은 죽어가고 있다”며 트럼프케어의 비관적 운명을 공언하는 중진 공화의원들이 늘어나면서 언론은 트럼프케어 무산 후의 다음 단계를 예상하는 ‘플랜 B’를 내놓기 시작했다. 수정안의 내용부터 모든 상황은 유동적이고 통과 가능성은 아직 남아있지만 이미 거론되는 플랜 B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오바마케어 폐지안만 먼저 통과시키고 대체안은 후에 마련하자는 것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펜스부통령이 지지하지만 대체 없는 폐지안 통과는 상상하기 힘들다는 것이 중론이다. 둘째는 민주당과 협력하는 초당적 법안인데 먼저 오바마케어 ‘폐지’에 대한 이견을 극복해야 한다. 민주당은 폐지 아닌 개선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오바마케어 폐지에서 오바마케어 구제로 바꾸는 것은 공화당에겐 ‘정치적 재난’을 뜻한다”고 LA타임스는 분석한다.

“독립기념일 퍼레이드에 15번이나 참가했으나 모든 사람들이 단 하나의 이슈만을 제기한 것은 금년이 처음이었다”는 콜린스 의원은 “헬스케어가 바로 개개인의 일상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바마케어도 입법 전부터 반대가 극심했다. 그러나 반대의 성격이 좀 다르다. 보험 가입에 대한 개인의 선택자유를 요구하며 큰 정부의 개입을 반대하는 이념 투쟁이 주요 핵심이었다.

트럼프케어 반대는 이념투쟁이 아니다. 적어도 메디케이드 수혜자들에겐 그렇다. “난 살기 위해서 메디케이드가 필요하다”는 한 시위자의 호소처럼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트럼프케어는 생과 사를 가르는 절박한 과제다.

국민들의 생명을 지켜주는 일 - 정부라는 조직의 이 가장 기본적 책임을 다 하는 것이 국민들이 뽑아준 의원들에게 그렇게도 어려운 일인가.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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