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동요

2017-06-27 (화) 12:00:00 정고운(패션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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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가 태어나 구입한 사운드 북을 둘째가 잘 활용하는 시기가 왔다. 사운드 북은 책에 버튼이 달려 있어 누르면 소리가 나는 책들이다. 가장 잘 활용하는 책들은 주로 동요 책으로 동요 가사와 적절한 그림들이 섞여 있어 버튼을 누르고 노래를 들으며 따라 부를 수 있다. 특히 아이가 어릴 때에는 엄마가 함께 옆에서 열심히 불러주면 아이가 참 좋아한다.

최근 한국에서 친구가 와서 새로운 사운드 북을 선물로 받았는데, 예전에 내가 듣고 자란 노래들과 새로운 노래들이 섞여 있었다. 그런데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나는 속으로 경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 바다가 불러 주는 자장노래에 /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섬집아기다. 여기서 아기가 몇 살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슬퍼졌다. 텅 빈 집에 남아 재워주는 사람 없이 외롭게 바닷소리를 듣고 잠이 들다니. 그것도 혼자다. 아이를 이렇게 남겨두고 굴 따러 가야 하는 고된 생계의 슬픈 상황은 차치하고, 이게 말이나 되나. 보아하니 학교도 아직 안 간 어린아이일 것이다. 혼자 남겨진 아이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구구절절 설명 안 해도 모두가 안다.

‘꼭두각시 인형 피노키오 나는 네가 좋구나 / 파란 머리 천사 만날 때는 나도 데려가 주렴 / 피아노 치고 미술도 하고 영어도 하면 바쁜데…’이건 피노키오라는 노래다. 내가 듣고 자란 노래가 분명하고, 어렸을 때는 신나게 불렀던 것 같은데, 지금 듣고 가사를 보니 사교육에 시달리는 아이의 쉬고 싶고, 놀고 싶은 소망을 담은 내용이다.

미국에도 이런 경악 또는 놀랄 만한 내용의 동요가 없는 게 아니다. 가장 유명한 자장가인 rock-a-by baby는 나무에 있던 아기 바구니가 바람에 흔들리다 가지가 부러져 떨어지는 것으로 끝나는 내용이다. 이 아이가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 크게 다쳤을 수도 있겠다는 추측만 난무할 뿐이다.

아마 위의 노래들을 듣고 놀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부모가 된 후 세상을 보는 기준, 사물과 상황을 해석하는 방법이 달라졌다. 내 기준에서만 보던 것들이 내 기준이 아이를 포함한 기준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동요를 듣다가 슬퍼지고, 생각에 잠기게 되는 것은 내가 엄마가 되고 생긴 큰 변화 중에 하나인 것 같다.

<정고운(패션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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