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감추고 싶은 과거, 흑역사
2017-06-20 (화) 12:00:00
정고운(패션디자이너)
흑역사는 아직 국어사전에 있지 않은 은어에 가까운 인터넷 신조어다. 모 만화에서 시작된 단어로 암흑기, 검은 역사,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과거 등을 말할 때 쓰이는 단어이다. 그리고, 이 흑역사는 누구에게나 있다고 말한다. 흑역사는 자기 전에 갑자기 생각나 손발이 오글거릴 기억, 왜 그랬을까 하며 계속 후회하는 자신의 과거이다.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 또는 생각 등을 싸이월드를 시작으로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공개된 곳에 쉽게 올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이것들이 자신의 흑역사가 되어 돌아오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연예인이나 다른 유명인들이 대중에 유명해지기 전, 자신의 개인 계정에 올려놓았던 사진이나 메모들은 그들의 인기에 방해가 되는 요소, 흑역사가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성형 전의 모습이 남겨져 있다던지, 본인의 지금 이미지, 대중에게 각인된 이미지와 맞지 않는 글들을 과거에 올려놓은 경우, 그 기록이 흑역사로 남아 사회활동에 빨간불이 켜지게 하기도 한다.
가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내가 예전에 쓰던 아이디나 이메일 주소 등을 검색하면 내가 남겨놓았던 상품평, 질문 등 잊고 지내던 것들이 수두룩하게 나온다. 다행히도 이것들이 나에게 지우고 싶은 과거까지는 아니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지우고 싶은 내용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자기도 잊고 지낸 과거, 인터넷상에 떠도는 흑역사, 지우고 싶은 인터넷 상의 흔적들을 지울 수 있는 권리를 ‘잊힐 권리’라 한다. 포털 등 인터넷 사업자에게 삭제를 신청하면 제도적으로 본인 관련 내용을 삭제할 수 있다고 한다. 법제화된 것은 아니지만 나쁘지 않은 제도인 것 같다.
하지만 인터넷에 올려진 흑역사만 흑역사일까?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 내가 했던 일들이 종종 자기 전에 갑자기 생각나 뒤척이게 할 때가 있다. 지인 중 누구도 알고 있는 일이 아니면 그나마 뒤척임이 적다. 나만 가끔 생각날 때 손발이 오그라드는 경험을 하면 된다. 그러나 지인도 알고 있는 나의 흑역사라면 생각날 때마다 나의 심장은 부끄러움에 쿵쾅댄다. 오늘도 인터넷에서 모 연예인의 흑역사에 관한 글을 보다가 나의 과거가 생각났다. 아쉽게도 내 머릿속은 잊힐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흑역사, 만들지 않는 게 상책인 것 같다.
<정고운(패션디자이너)>